•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군사대로]미국에도 탁현민 있나? 한미 대통령 무릎 꿇은 이유

등록 2021.05.30 09:00:00수정 2021.06.04 14:13:04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문재인·바이든, 청천강 전투 영웅에 경의

청천강 전투, 남북 통일 목전 참패 사례

국군·유엔군 소통 문제로 중공 대응 차질

[워싱턴=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한 후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5.22. scchoo@newsis.com

[워싱턴=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한 후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5.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미국 정부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6·25전쟁 당시 청천강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를 받은 랄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은 1950년 미8군 특수부대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고 그해 11월25일 205고지 전투에 참여했다.

훈장 수여 행사는 미국 백악관이 기획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퍼켓 대령 앞에 무릎을 꿇자 문 대통령도 이어 무릎을 굽혔다. 한미 양국 대통령이 나란히 경의를 표한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청와대 행사를 기획해온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 장면이 미리 계획했던 게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탁 비서관은 지난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 그거는 구상을 할 수가 없죠. 상당히 제한적인 장소고 또 어떻게 될지. 우리나라는 그런 식의 훈장 수여식은 없다"며 "어떤 형식으로 진행이 될지 시나리오는 알고 있었지만 같이 사진을 찍자는 것도 즉석에서 받았던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퍼켓 대령이 고지 점령 과정에서 맹활약을 펼쳤다고 소개했지만 사실 청천강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 모두에게 참혹한 패배였다. 승전이 아닌 패전에서 활약한 인물에게 최고 훈장이 수여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행사에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봐야 한다.

청천강 전투는 3년간 이어진 6·25전쟁 중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낙동강전선으로 집중됐던 인민군의 허를 찔러 전세의 판도를 바꾼 한국군과 유엔군의 승전이었다. 반면 청천강 전투는 중국 국경선으로 진격 중이던 한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대병력의 기습을 받고 38도선으로 되돌아서야 했던 패전이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1950년 10월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개시한 국군과 유엔군은 10월10일 원산을 탈환하고 10월 중순 평양을 향해 진격했다. 선봉부대인 국군 제7연대는 이미 평양보다 북쪽에 있는 청천강을 넘어 중국 국경선을 향해 북진하고 있었다.

[워싱턴=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1.05.22. scchoo@newsis.com

[워싱턴=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1.05.22. [email protected]

청천강은 북한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곳을 살수(薩水)로 불렀다. 수나라 양제의 100만 대군이 침략했을 때 을지문덕 장군이 크게 승리한 곳이기도 하다. 

청천강을 건너던 국군은 전세가 기울었다고 봤다. 북진 도중 인민군의 저항을 받아도 이를 섬멸하지 않을 정도였다. 일부 부대는 인민군 포로를 붙잡고도 간단한 심사 후에 극렬분자만 색출한 후 나머지는 풀어줬다.

국군이 여유를 부리던 이때 중공군이 남하해 북한 지역으로 진입했다. 중국은 북한에 지원군을 파병할 때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자국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항거하고 북한을 원조한다는 뜻이었다.

중국으로서는 대만해협이 미국 제7함대에 의해 봉쇄돼있는 상황에서 동북지방에 강력한 반공 세력이 진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중국은 18만명의 대병력을 동원해 국경선 남방 100㎞ 지점에 있는 운산과 온정리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국군과 유엔군 선봉부대 진격을 저지했다. 이후 중국은 30만명을 추가로 동원해 11월25일부터 12월1일까지 청천강 일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이때까지도 국군과 유엔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국군과 유엔군 간에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국군은 중공군 출현 사실을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로 긴급 보고했지만 유엔군사령부는 소규모 증원부대 또는 중공군에 편입돼있던 한국인 부대 정도로 판단했다.

[서울=뉴시스]청천강 전투 당시 미8군 전투 개념. 2021.05.30. (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청천강 전투 당시 미8군 전투 개념. 2021.05.30. (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8군과 유엔군사령부 산하 정보기관은 중공군 병력을 실제보다 턱없이 적은 7만6800명으로 평가했다. 이 같은 판단하에 유엔군사령부는 15만명 수준인 미8군 병력으로 공격 작전을 재개했다. 전황이 급격히 악화돼 수세에 몰리고 있는데 전진명령이 내려지니 전장에 있던 일선 지휘관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청천강 전투 결과 국군과 유엔군은 2주 만에 38도선까지 밀렸다. 청천강 전투에서 패한 유엔군은 12월3일부터 전면적인 철수를 단행해 190㎞를 남하한 끝에 12월 중순 38도선 부근에 새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철수 과정에서 유엔군에서 사상자 1만3000여명이 발생했다. 장비와 물자의 손실에 심리적 불안까지 겹쳐 사기가 저하됐다.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내놓고 37도선으로 남하하는 1·4 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청천강 전투에서 승리한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미국은 전쟁이 확대될 것을 우려해 한반도 통일이 아닌 분할 점령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청천강 전투는 극동의 국지적 분쟁을 세계열강의 각축전으로 발전시킨 세기적인 결전이었다"며 "우리 민족에게는 국토통일의 일보 직전에서 전쟁 이전의 원점으로 되돌아서야 했던 통한을 남긴 전투였다"고 평했다.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1.26. [email protected]

최윤철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정학적 관점이 중국의 6·25 전쟁 참전에 미친 영향 연구' 논문에서 "마오쩌둥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지역이든 타이완 지역이든 미국과의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였을 것"이라며 "미군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중국의 본토를 벗어나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됐을 것이다. 순망치한이라는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관점이 그의 결정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국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청천강 전투 패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71년 전처럼 총을 겨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정부가 노골적이었다면 바이든 정부는 은유적일 뿐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견제 동참 요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청천강 전투 당시 패인으로 꼽힌 국군과 유엔군의 소통 문제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이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비분담금 등을 이유로 미국에 불만을 품어 한미동맹에 금이 가면 이는 중국과 북한에 이로울 뿐임을 경고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런 태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우리 정부에 슬기로운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손한별 국방대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국방대 국제안보학술회의에서 "미국은 역내 동맹국들을 활용해 세력균형의 우위를 유지하고자 하고 중국은 미국의 동맹체제에 균열을 야기해 방해하고자 하는 가운데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며 "방위비 분담을 포함한 한국의 동맹 내 역할 및 책임, 비용 증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 현안에 대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다뤄서는 안 되며 최소한 지경학적으로는 중국을 포용하면서 전략적 이익을 제공해야 한다"며 "중국에 대한 한미의 전략적 인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고 한미동맹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한미동맹이 미래지향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기타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