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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두 "11년 만의 '제7의 인간', 그리움이 늘었습니다"

등록 2021.05.31 13:31:43수정 2021.06.01 21: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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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5일 LG아트센터 공연

[서울=뉴시스] 정영두. 2021.05.31.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영두. 2021.05.31.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안무가 정영두의 대표 무용작 '제7의 인간'은 이주노동자 문제 앞에 겸손하다.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인 '제7의 인간'(존 버거·장 모르 지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정치적 메시지나 이념적 판단을 담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춤으로써 감각한다.

2010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했다. 당시 한국춤비평가협회 '올해의 무용 작품 베스트 6'에 꼽혔다. 이 작품이 11년 만에 LG아트센터(6월 4~5일) 무대에 다시 오른다. 함께 제작에 참여한 고양아람누리(6월 11~12일), 구리아트홀(6월 18~19일)에서도 공연한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정 안무가를 만나 11년 전과 같거나 달라진 점에 대해 들어봤다. 기존 음악은 클래식 위주였는데, 이번에 길옥윤이 작곡한 '나성에 가면', 심수봉의 '나는 어디로' 등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가 담긴 우리 노래들이 추가되는 등 변화가 생겼다.

-11년 전과 가장 달라진 지점은 무엇입니까?

"당시엔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했어요. 그렇다보니 작품 분위기가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매몰됐죠. 10년 정도 지나고 나이가 들다보니,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주노동자, 이민자들이 꿈꾸는 기쁨, 즐거움을 다루려고 애를 썼어요. 다만 정서적으로는 그리움이 작용했어요. 제게도 정이 늘었거든요. 장면, 안무적인 측면에선 밀도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동명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드신 작품입니다. 터키·포르투갈 등 당시 개발도상국의 유럽 이민노동자들이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경험한 일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한 책인데 무엇이 인상적이었나요?

"'지난한 삶을 바꾸자'라는 메시지가 아닌, 삶을 담담히 기술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버거의 글만큼 모르의 사진이 중요한 책이에요. 새 나라에서 허가증을 받기 위해 신체검사를 기다리는 모습 등이 신문 기사보다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떠나야 하나' '왜 머물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나' 같은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안무가님도 이방인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극단 현장에서 노동극 또는 마당극에 참여하시다가 몸에 대한 관심으로 무용으로 방향을 트셨죠. 머무르기보다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작품에 제 역사를 대입한 건 아니에요. 이주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를 떠올리긴 했죠. 1800년대 대기근으로 인한 연해주 이주를 비롯해 한일합방 이후 사할린, 하와이 이주, 한국 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남북의 고향을 떠난 사람들, 1960~7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영화 '미나리'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으로 떠난 사람들…. 우리는 왜 그렇게 떠나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어요. '오직 개인의 꿈과 희망을 갖고 그랬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뉴시스] '제7의 인간' 2010년 초연 사진. 2021.05.31.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제7의 인간' 2010년 초연 사진. 2021.05.31.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얼마 전 제주 예멘 난민 문제도 있었고, 이주 문제는 계속 화두가 될 거 같습니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해답을 엿보신 게 있나요?

"질문이 더 많아졌어요. 예술가들이 정치적인 해답을 내기는 어렵죠. '본성을 인정하자'는 생각은 했습니다. 우리 안에 낯선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지만, 낯선 존재에 대해 경계하는 본성도 분명 있죠. 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상에서 노동력을 비롯 위협적인 내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거든요. 중요한 건,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해도, 쉽게 갈라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정치와 이념이 존재해야 하지만, 삶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7의 인간'은 무용 작업이기 때문에 무용 안에서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1992년 극단 현장을 통해 발을 들이셨으니 내년이면 벌써 공연계에서 활약하신 지 30주년입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지금은 좀 더 유연해진 느낌이에요."
 
"극단 들어가서는 막내였죠. 그런데 무용단을 꾸리다보니까(2003년 '두 댄스 씨어터' 창단) 갑자기 리더가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제가 설명하게 되고, 까불면 안 되게 된 거죠. 혼자 해나가려고 하다보니, 그런 점이 예민함으로 표출된 거 같아요. 사실 장난기도 많거든요. 지금은 좀 더 여유가 생겼어요. 그런 점이 이번 '제7의 인간'에도 반영이 된 거 같아요."

-올해 준비하는 새로운 작업이 있나요?

"24절기 안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절기마다 어떤 일을 하셨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음악극 '적로'를 함께 작업한) 최우정 작곡가, 배삼식 작가와 협업을 하고 있고 올해 쇼케이스를 선보이고 내년에 공연할 예정입니다. 12월엔 국립현대무용단과 동명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한 '구두점의 나라에서'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시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라, 안무가로서 흥미롭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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