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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北 '남조선혁명론' 포기" 해석…국정원의 희망사항?

등록 2021.06.1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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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개정 北 '당 규약' 지난 1일 국내 공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남조선혁명론 포기" 해석

'포기 아니다'는 국내외 반박 견해도 다수

통일노선 변화 의미 파악만큼 북 행동 근거 판단 중요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이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노동당 규약'이 국내에 공개됐습니다. 규약에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한 것을 두고 '남조선(대남)혁명론이 소멸'했다는 해석이 나왔고, 다시 반대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번 화 <창 넘어 북한>은 당규약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이번 주 <창 넘어 북한>에선 다소 늦었지만 북한이 지난 1월 새로 개정한 노동당 규약을 다루겠습니다.

북한은 매번 당대회마다 규약을 개정했기 때문에 8차 당대회에서 규약이 개정된 건 전혀 새로운 사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규약 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 규약이 공개된 건 지난 1일입니다.

일부 언론이 다른 언론들보다 몇 시간 앞서서 보도하고 국내 모든 언론이 이를 취급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먼저 입수해 보도한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들은 말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규약을 보안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통일부에 넘겼는데 통일부가 이걸 유출했다.'

통일부나 국정원이 직접 이런 해명을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다루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퍼진 소문입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입니다. 국정원보다 통일부가 보안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소문은 경험상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등 참석자들과 원훈석을 제막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한중 양지회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이사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 문 대통령, 박 원장, 윤형중 국정원 1차장, 박정현 국정원 2차장, 김선희 국정원 3차장, 박선원 국정원 기조실장. (사진=청와대 제공) 2021.06.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등 참석자들과 원훈석을 제막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한중 양지회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이사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 문 대통령, 박 원장, 윤형중 국정원 1차장, 박정현 국정원 2차장, 김선희 국정원 3차장, 박선원 국정원 기조실장. (사진=청와대 제공) 2021.06.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8차 당대회에서 규약이 개정됐다는 점은 1월10일 노동신문에 공개된 내용입니다. 다만 북한 스스로 새로 개정된 규약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당연히 국정원은 새 규약을 입수하기 위해 애를 썼겠지요. 국정원이 언제 새 규약을 입수했는지는 국정원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당대회가 열린 지 5개월이 지난 6월초에서야 공개된 사실을 보면 국정원이 새 규약을 입수하는데 그다지 기민했다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북한처럼 비밀주의가 철저한 나라를 상대로 정보 수집을 해야 하는 국정원으로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막대한 예산과 수많은 인력과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대북 정보기관이라는 평판엔 걸맞지 않습니다.

잠시 옆길로 샌 듯합니다.

조금 더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1일 일부 언론이 새 규약을 보도한 다음날 통일부 기자단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화상회의를 갖고 새 규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일설엔 국정원이 이종석 전 장관에게 새 규약을 사전에 제공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북한 정치연구자 중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분이니까 국정원이 새 규약을 입수한 뒤 평가를 부탁했다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 전 장관이 기자들 앞에 내놓은 해석이 뒤에 계속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점입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북전단지와 볼턴의 충격, 대북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0.07.03.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북전단지와 볼턴의 충격, 대북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0.07.03. [email protected]

연합뉴스가 인용한 이종석 전 장관의 발언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북한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맞지 않으며 남조선 혁명도 포기했다.'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론이 약화했고 규약에서는 남조선혁명론이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의 발언은 여러 언론에 크게 보도됐습니다. 북한이 정말 대남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했다면 그건 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며칠 뒤부터 여러 전문가들의 반박이 이어졌습니다. 반박이 며칠 뒤부터 나오게 된 이유는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이 전 장관보다 규약을 늦게 입수한 때문일 겁니다.

이상의 상황을 제 나름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음모론적 시각을 혐오하는 편입니다만 이번에는 거리낌 없이 펴보겠습니다.

국정원이 개정된 당 규약을 몇 달 걸려 뒤늦게 입수했고 그 내용을 자체적으로 검토한 결과 전문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면 논란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논란이 될 만한 대목에 대해 북한 연구 권위자인 이종석 전 장관이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논란을 축소하려고 시도했다.

새 규약에 대한 이 전 장관의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 언론을 선정해 새 규약 내용을 흘렸다.

'물을 먹은' 북한 담당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이 전장관이 화상회의를 가짐으로써 이 전 장관의 해석이 널리 퍼지도록 도모했다. '물을 먹었다'는 표현은 특종의 반대말 낙종을 뜻하는 언론계의 속어입니다.

이런 음모론적 시각이 맞는 건지는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이 전 장관의 해석이 크게 보도된 뒤 그 같은 해석에 반발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 등 주목을 끌지 못하는 상황임을 볼 때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이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한 사람이나 기관이 있다면 충분히 효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전 장관의 해석을 반박하는 견해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의 발언을 북한에 비판적인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일각에서 북한이 한국과 평화 공존을 추구하기로 했다는 식의 분석이 나오는데 개정된 당 규약 어디에도 그러한 낌새는 찾을 수 없다."

김 전 차관은 이어 "핵무장으로 인한 자신감을 가진 북한이 무력으로 주한미군을 밀어내겠다는 의미"라고 이 전 장관과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 문제에 대해 다소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분입니다. 주요 언론들은 김 전 차관의 발언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9일자로 펴낸 '개정 조선노동당규약의 핵심 쟁점 분석'이라는 글입니다.

오경섭 연구위원이 썼는데 이 내용 역시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글에서 직접 인용하겠습니다.

좀 깁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한 것을 두고 "북한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맞지 않으며 남조선혁명도 포기했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가?"

"(북한의) 대남혁명론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었다….그러면 북한은 왜 당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 발전'으로 수정했는가? 북한은 합법 정치 공간을 활용한 선거 혁명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남조선혁명론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향후 북한은 한국의 합법 정치 공간을 이용하는 합법정당 건설과 선거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해외의 시각도 인용하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매주 북한 문제를 종합 해설하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입니다.

"뉴스를 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수정에 대해서 북한이 적화통일을 포기했다는 그런 분석도 나오고 있다면서요? 하지만 규약에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겠다는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앞으로 북한이 남북통일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스스로 해방에 응하는 게 아니고 북한이 군사력을 사용해 강제적으로 통일한다는 그런 목표만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전 장관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분들의 발언은 이외에도 다수 있습니다만 내용이 비슷해 더 인용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이 전 장관 발언을 많은 언론들이 크게 보도한 것과 비교할 때 이를 비판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시각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이 전 장관의 시각과 유사한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통일노선 변천사를 깊이 있게 연구한 사람들은 북한이 실질적으로 무력에 의한 대남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한 것이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라고 각종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번 당규약 개정은 그 같은 변화를 규약에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종석 전 장관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결국 앞으로도 북한이 과연 대남 무력통일노선을 포기했는지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의 논란이 정리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공식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의 시각은 어떨까요?
 
"자기 힘이 분단을 추구하는 상대를 압도해야 민족의 소원을 이룩할 수 있다…당 규약 서문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 자체의 힘으로 평화를 보장하고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는 노동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이 여기에 반영돼 있다."

이 글에 대해서도 여전히 해석이 갈립니다만 여러분들도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북한의 통일노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전문적인 연구 대상입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그걸 통해 나름의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분단시대 한국인에게 필요한 자세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규약이든 헌법이든 글 귀에 나오는 내용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보다는 북한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행동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핵무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8일자로 방송된 <창 넘어 북한>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방송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정은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군대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한 군대는 우리 군대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넘어북한] "北 '남조선혁명론' 포기" 해석…국정원의 희망사항?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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