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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만에 찾은 6·25아버지①]임신한 아내 두고 전쟁터에 나서 유골로

등록 2021.06.22 10:18:10수정 2021.06.22 17: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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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자 이길순씨, 전사당시 이름달라 아버지 찾기 '머나먼 길'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아버지 찾아…유골 꺼내 DNA 감식도

68년 만에 부녀관계 인정…그동안 동명이인이 보훈금 받아

"군인정신 무장한 전인석 기동대장 도움 없었으면 못했을것"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전주=뉴시스] 윤난슬 심회무 기자 = 대한민국에서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추모하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 기간에는 정부를 비롯해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온 국민의 귀감으로 삼아 국민 애국심을 승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 및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전몰군경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국가유공자 자격 증명 책임을 관계 부처가 아닌 개인에게 떠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집돼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경기도 연천지구 전투에 나섰다가 82㎜ 박격포탄에 의해 숨진 참전 용사의 가족들이 무려 16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당시 고인이 아닌 동명이인(전몰군경)의 다른 가족들이 연금을 수령하면서 진짜 가족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들로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군인이다'라는 사명감 하나로 긴 세월 동안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한 참전 용사의 가족을 위해 13년간 헌신한 군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뉴시스는 한국전쟁 71년 특집으로 '68년 만에 찾은 6·25 아버지' 이야기를 3회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주>

◇기구한 운명, 질서 없는 시대가 낳은 처절한 운명

지난해 12월 2일 이길순(69·여)씨는 전북동부보훈지청으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이씨는 이 증명서를 가지고 요양원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찾아 한없이 울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아버지를 찾았다는 증명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흔이 된 어머니는 이미 이 증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남고산성 중턱 마을에 살던 이씨의 기구한 인생은 아버지가 만삭인 어머니를 두고 입대(1952년 8월 7일)하면서 시작됐다.

이씨의 아버지는 정전협정일(1953년 7월 27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둔 그해 6월 27일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입대 10개월 만 이었다. 숨진 아버지의 유골은 이씨 어머니 대신 아버지 형제와 마을 사람이 받았다.

혼인 신고 없이 이씨를 가진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대에 입대한지 1달여 만에 1952년 9월 1일 이씨를 낳았다. 유복자(아버지가 사망한 후 태어난 아이)였던 이씨에게는 '길에서 주운 여자아이'라는 뜻에서 '길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씨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학교와 사회생활 문제 때문에 둘째 큰아버지 앞으로 호적을 올렸다. 집안 자체가 가난했고 배운 것이 없어 이씨는 보훈이 무엇인지 국가 보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아버지 이름조차 잘 몰랐다.

결국 이씨와 그의 어머니는 평생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살았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지금은 달동네가 된 부모 고향에 여전히 살고 있다.

◇이름이 2개였던 아버지…험난한 여정의 시작

2005년 7월 이씨는 아버지 찾기에 나섰다. 이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1연평해전 희생자 보상 등으로 보훈 문제가 사회 쟁점이 되던 때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는 가족과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이씨 역시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또 평생 홀로 산 어머니에게 남편을 찾아주고 싶었다.

이씨는 가족 어른들에게 아버지 이름을 확인하고 국방부를 찾아가 '병적기록' 확인을 요청했으나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집 안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이름은 '상오'였고 호적에 올라간 이름은 집안 학렬에 따라 '점수'였기 때문.
 
호적 이름을 비롯해 집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찾아봤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아버지의 군적 이름은 '상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이씨는 아버지 찾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전인석 기동대장과의 극적인 만남

아버지 찾기를 포기했던 2007년 7월. 이씨는 소령으로 전역하고 새내기 동네 예비군 중대장(전주 덕진구)이 된 전인석 기동대장을 만났다. 전 기동대장은 그때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 주민센터에서 본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 주민센터에서 본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 보관 중인 한국전쟁 희생자 명단과 이씨 큰아버지 집안의 호적과 제적 기록, 여기에 훈장 기록과 전사자 통보 및 유골함 수령자 기록까지 70년 가까이 된 서류들의 짜깁기가 시작됐다.

이런 작업조차 5년이 소요됐다. 그러던 2013년 7월. 전주시 묘지 대장, 정확히 말하면 전주시 교통 군경묘지(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 공무원 희생자를 모신 곳) 묘지 대장에서 이씨와 전 기동대장은 아버지 흔적을 찾았다.
 
먼저 묘비명 '이상호'의 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앞서 호적 등재부터 달라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도 먼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어머니와의 친생 관계를 입증했다.

하지만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버지 집에서는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부 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의 증언, 엄마의 고백으로는 풀리지 못하는 법적 문제였다.

결국 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여부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부녀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군경 묘지에 묻혀있던 아버지의 유골을 꺼낸 뒤 유전자 감식에 나섰다. 그러나 화장된 땅에 묻힌 67년 된 유골과 현존자의 유전자 감식의 성공 확률은 5%에 불과했다. 감식 결과 역시 '판명 불가'였다.

담당 판사도 판결의 곤란함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때 전 대장이 나섰다. 군복을 입고 법정에 선 전 대장은 10여 년에 걸친 과정과 군인의 의무,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며 부녀관계임을 인정해 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60여 년 전 보훈 가족으로 등록된 동명이인 가족이 현재 '거주 불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68년 만에 만난 아버지 그리고 훈장, 눈만 깜박이는 90살 노모
 
이씨 모녀와 전 대장의 간절함에 지난해 4월 21일 법원은 이씨와 고인이 실제 부녀관계임을 인정했다. 이 판결을 근거로 이씨는 국가보훈처에 보훈 가족의 등재를 신청했고, 반년 만에 이를 수용했다.

이씨가 보훈 가족 등록 서류를 제출한 시점(2019년 7월)부터 지원금을 산정해 지급하기 시작했다. 1954년 아버지에게 추서된 훈장(무공화랑)도 다시 받았다.

65년 만에 돌아온 이 훈장은 의식 없이 말도 못 하는 아흔 된 엄마 옆에 놓였다. 찢어지는 가난 속 아버지 집 안에서 사진 한 장 얻지 못한 딸은 눈물을 물감 삼아 훈장 속 이름 석 자 위에 아버지를 그려 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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