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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용구 수사, 외압 없었다"…찝찝한 까닭은

등록 2021.06.14 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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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용구 수사, 외압 없었다"…찝찝한 까닭은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15층.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부실수사 의혹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고위급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동 없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지만, 이를 들은 수십명의 기자들은 술렁였다.

"실무자만 송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당 수사관은 영상 존재를 알고도 왜 보고 안 했는가", "서장과 과장은 이 전 차관 신분을 알고도 서울청에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뭐라고 진술하나" 등 여러 개의 질문이 이 관계자에게 날아들었지만 답변은 비슷했다."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당시 경찰 설명과 그 의미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지난해 11월 이 전 차관 폭행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 서초경찰서 담당자(경사)는 택시기사가 보여 준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그의 단독 일탈로 수사는 부실해졌다. 그가 애초에 보고한 사실이 없으므로 서초서장과 형사과장은 잘못이 없다. 게다가 이 수사관은 누군가의 요청도 없었는데 혼자서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였던 이 전 차관 사건을 대충 마무리지었다.'

비간부인 수사관 1명의 일탈은 엄중한 결과를 초래했다. 경찰은 외압 없이도 부실수사를 하는 조직이 됐고, 수사권 독립이라는 '숙원'을 일부(1차 수사종결권) 부여 받은 첫해 첫번째 시험대에서 낙제점을 받은 셈이 됐다.

몇 가지 질문들은 그대로 남았다. 서초서 관계자들은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임을 알았음에도 왜 모른 척 했는지, 변호사 사건은 서울청에 보고한다는 규정은 왜 그렇게 쉽게 무시됐는지 등. 부실수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부실조사로 비치는 이유다.

들끊는 여론을 '냄비'에 비유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끓는 냄비는 무언가가 익을 수 있는 순간이다. 조리만 제대로 하면 냄비는 단 한 번 끓어오름으로써 한 가지 음식을 완성할 수 있다.

경찰이 이 사건을 두고 진상조사를 한 게 지난 1월부터 5개월이다. 5개월간 국민들은 무언가가 무르익기에 적당할 정도로 충분히 들끓었다. 하지만 경찰이 던진 대답은 불충분했고, 이 절호의 순간이 지나면서 냄비는 곧 식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분노할 것들이 지나치게 많은 탓이다. 

어쩌면 경찰은 국민의 준엄한 비판을 피할 시간을 벌었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반드시 재발한다.

다행히 기회는 남아 있다. 경찰은 서초서장과 과장, 팀장 등에 대해 감찰 조사를 추가로 진행한다. 검찰이 곧 이 전 차관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다. 검찰이 아닌 경찰이 자신들의 내부 문제를 스스로 교정하고, 이 사건을 진짜 '종결'하기를 바라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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