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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이영훈·김현식·신중현...'주크박스 뮤지컬' 왜 돌아오나

등록 2021.08.04 0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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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훈, 작곡가. 2021.08.04. (사진 = 영훈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훈, 작곡가. 2021.08.04. (사진 = 영훈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옛사랑'의 이영훈(1960~2008), '내 사랑 내 곁에'의 김현식(1958~1990), '아름다운 강산'의 신중현(83)….

바야흐로 '주크박스(Jukebox) 뮤지컬' 전성시대다.

이영훈 작곡가가 만들고 주로 가수 이문세가 부른 노래를 엮은 '광화문 연가'(9월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가수 김현식이 부른 명곡들을 모은 '사랑했어요'(14일~2021년10월31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만든 곡들을 묶은 '미인 : 아름다운 이곳에'(9월15일~12월5일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 등이 무대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이 작곡가는 한국 팝 발라드의 개척자로 통한다. 주로 이문세와 호흡을 맞춰 히트곡을 양산했다.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이다.

이곡들을 엮은 '광화문연가'는 1980~1990년대 정서를 강력하게 환기한다. 주인공 '명우'가 임종 1분을 남기고 기억 또는 마음의 빈집에 똬리를 튼 옛사랑 '수아'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골격이다.

이 작곡가의 곡들을 묶은 뮤지컬답게 고인에 대한 헌사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명우의 아내 '시영'과 관련,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는 고인과 고인을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송가(送歌)이자 이영훈의 아내인 영훈뮤직 김은옥 대표를 위한 위로가처럼 느껴진다.

이지나 연출, 고선웅 작가, 김성수 음악감독 등 국내 정상급 제작진이 의기투합해 2017년 처음 선보였다. 초연은 매진 행렬을 기록했고 2018년 재연도 '젠더프리 캐스팅', '싱어롱 커튼콜'로 주목 받았다. 이번 시즌엔 윤도현, 엄기준, 강필석, 차지연, 김호영, 인피니트 김성규 등 뮤지컬스타들이 출연한다.

1980년 1집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데뷔한 김현식은 걸출한 보컬리스트로 평가 받는다. 점점 나빠지는 건강상태 탓에 목소리 역시 갈수록 탁해졌는데, 그것이 오히려 매력이 됐다.

[서울=뉴시스] 김현식. 2020.10.27.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현식. 2020.10.27.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아픈 몸으로 인해 갈라지고 탁한 생소리가 고독과 상처받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줬다는 평도 있다. 뮤지컬 제목인 '사랑했어요'를 비롯해 '넋두리' '비처럼 음악처럼'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뮤지션으로 통한다. 정해진 형식이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을 노래해 '사랑의 가객'으로도 불린다.

뮤지컬은 김현식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여린 감성을 지닌 고독한 싱어송라이터로 50대 후반의 성공한 대한민국의 가수 '이준혁'의 사랑 이야기다. 2019년 초연했고 이번에 수정, 보완을 거친다. 이번 재연 공연에 김현식의 대표곡 '내 사랑 내 곁에'가 추가됐다. 조장혁, 플라워 고유진, 세븐 등 가수들이 대거 나온다.

'한국 록의 대부'로 통하는 신중현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미8군 무대에서 음악을 시작해 1958년 첫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를 발표한 그는 '미인' 초연한 해인 2018년 데뷔 6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2017년엔 미국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뮤지컬 '미인'엔 '신중현 사단'으로 불린 김추자, '펄 시스터즈', 박인수, 김완선 등이 삽입된다. '미인' '아름다운 강산' 외에 서정적인 '봄비', 유쾌한 리듬의 '커피 한잔', 애잔한 감성의 '꽃잎' '빗속의 연인' 등이다.

초연 당시 중대형 극장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 3년 만인 이번엔 소극장 무대로 옮겨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의 무성영화관 '하륜관'을 배경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에 저항한 청춘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뉴시스] 신중현, 한국 록의 대부. 2018.05.28. (사진 = 홍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신중현, 한국 록의 대부. 2018.05.28. (사진 = 홍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이밖에도 브릿팝 밴드 '리버틴스'의 노래들을 엮은 뮤지컬 '보이즈 인 더 밴드'는 쇼케이스(10월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로 선보인다.

2017년 김영주 작가와 배경희 더뮤지컬 편집장이 대본을 썼다. 리버틴스의 음악과 일대기와 밴드를 소재로 한 청춘물이다. 배 편집장은 지난 2019년 리버틴스의 보컬·기타 칼 배럿을 국내에 초청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 바람이 분다. 오는 12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는 'MJ'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최초의 뮤지컬이다. 퓰리처상 극본상을 두 차례 수상한 유일한 여성작가 린 노티지(Lynn Nottage)가 극을 썼다. 그녀는 최근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의 작가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동전을 넣으면 유행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기계인 주크박스에서 유래했다. 인기 대중음악을 가져다 가 극적 형식과 얼개로 재탄생시킨 무대 공연물이다. 왕년 히트곡의 힘을 주무기로 삼는다.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 스웨덴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엮은 '맘마미아!'다. 앞서 국내 주크박스 뮤지컬 중에서는 1980~90년대 히트곡을 엮은 '젊음의 행진', '가객' 김광석이 부른 곡들을 모은 '그날들'이 인기를 누렸다. 
 
사실 두시간 반 또는 세시간의 뮤지컬 러닝타임을 내내 채울 수 있는 곡을 탄생시키기는 쉽지 않다. 기존에 히트한 대중음악은 선율이 익숙해 뮤지컬 장르에 익숙치 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

히트곡을 편곡해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KBS 2TV 음악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 대중이 크게 환호하는 것이 보기다. 뮤지컬 역시 대중성이 검증된 곡들을 복고·향수 마케팅으로 활용하면서 연령층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21.07.28. (사진 = CJ ENM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21.07.28. (사진 = CJ ENM 제공) [email protected]

'광화문 연가'의 이지나 연출은 최근 온라인 간담회에서 "뮤지컬 연출을 20년 넘게 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름다운 음악'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라며 음악의 힘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또 주크박스 뮤지컬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추억에 대한 강력한 환기다. 예컨대, 201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주크박스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탄탄한 완성도에도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전설적인 록 가수 프랭키 밸리(91)와 그가 속한 록&롤 그룹 '포시즌스'를 다뤘는데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컨스피러시'(1997) 등에 삽입된 밸리의 솔로곡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가 가장 잘 알려진 넘버였지만 한국 관객과 추억을 나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성공 조건 중 8할은 추억이 담긴 명곡인 셈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작사와 관객이 환영하는 이유다. 제작 환경과 모객이 열악해진 상황에서 추억을 환기할 수 있는 유명 대중음악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안정된 선택지가 된다. 시대가 어려워지면, 과거 좋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가 유행한다.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기보다 검증된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흐름이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도 이미 공연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그 중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장르"라면서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신세대에겐 검증된 새로움을 안겨줄 수 있다. 당분간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계속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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