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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20주년]②美 일상 파고든 불신·감시·증오

등록 2021.09.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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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뿌리부터 뒤흔들려"…무슬림 큰 타격

바리케이드·CCTV 대폭 증가…항공기 보안 검색도 '깐깐'

애국심 고양도…'美 테마' 상품 판매 급증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테러로 화마에 휩싸인 모습. 2021.09.09.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테러로 화마에 휩싸인 모습. 2021.09.09.

[워싱턴=뉴시스]김난영 특파원 = 지난 2001년 9월11일 오전, 글로벌 경제의 '심장' 뉴욕 한복판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굉음과 함께 충돌했다.

잠시 뒤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가 이번엔 남쪽 건물을 덮쳤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9·11 테러의 시작이었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3000여 명에 달하는 9·11 테러 이후 20년. 이 기간 미국인들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났을까.

'기회의 나라' 미국, 불신이 싹트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른바 기회의 나라로 불렸다. 중남미는 물론 중동과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몰려와 섞여드는 '용광로 나라'였다.

그러나 여러 인종이 공존하며 이뤄낸 미국의 역동성과 다양성은 9·11 이후 불신과 증오라는 큰 위협을 만나게 됐다. 특히 무슬림 미국인들의 삶은 이전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무슬림 미국인의 9·11 이후 삶이 "뿌리부터 뒤흔들렸다"라고 전했다. 발뒤꿈치에 박힌 유리 파편처럼 9·11의 상흔이 매 순간 그들 삶에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무슬림 미국인들은 당장 평범한 일상에서도 불편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WP는 "주유소에서 옆 차의 운전자가 빤히 쳐다본다. 슈퍼마켓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방향으로 카트를 돌린다"라며 "그 즉시 당신은 환영받지 못하고 불신을 받으며 혼자라는 사실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변화의 영향은 자아를 변화시킨다. 삶의 모든 측면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감시 카메라 대폭 증가…DC엔 '바리케이드' 등장

단지 무슬림계 미국인들만 이런 변화를 겪은 건 아니다. 미 기술 전문 월간지 와이어드는 9·11 테러 이후 눈에 띄게 촘촘해진 미국의 감시망을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맨해튼을 비롯해 브루클린과 브롱크스 등 뉴욕 주요 도시에는 현재 도합 1만5000여 개에 달하는 뉴욕경찰국(NYPD)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인근에서 시민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1.09.09.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인근에서 시민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1.09.09.

자체 카메라뿐만 아니라 NYPD는 약 2만여 개의 민간 카메라에도 접근 가능하다는 게 와이어드의 지적이다. 이는 9·11 전 맨해튼 전역 카메라 개수가 2400대가 안 됐다고 추산되는 점과 비교하면 확연한 변화다.

이 매체는 아울러 "9·11 전 뉴욕 시민은 신분증을 전혀 소지하지 않고도 종일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라며 현재는 거의 모든 대형 빌딩 또는 연구소 출입에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WP 역시 9·11 이후 워싱턴DC 소재 정부 시설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무장 요원들이 배치되는 등 감시가 강화됐다고 전했다. WP는 "여전히, 두려움은 계속된다"라고 이런 현상을 평했다.

'납치 트라우마' 여객기 탑승 양상도 변화

테러범들에게 납치돼 공격 무기가 됐던 항공기 이용에는 더욱 큰 변화가 생겼다. 뉴욕타임스(NYT)는 9·11 테러 이후 공항에서 탑승객들을 상대로 보안 검사가 대폭 강화된 점에 주목했다.

NYT는 "9·11 이전에는 항공기에 오르려면 금속 탐지기를 지나치기만 하면 됐다"라며 "이제는 이런 경험에 전신 스캐너를 비롯해 안면 인식, 컴퓨터 단층 촬영 스캐너 등 다른 선진 감시 기구가 포함될 수 있다"라고 했다.

수색대에서 신발을 벗고 벨트를 풀거나, 전자기기를 별도의 바구니에 넣어 검사하고 액체류를 속이 보이는 가방에 넣는 등 행위도 9·11 이후에는 드물지 않은 보안 검사 절차 중 하나가 됐다.

아울러 여객기 승무원들은 특정 승객이 테러범일 가능성을 평가하는 훈련을 받으며, 비행 중 불상사에 대비해 필요한 경우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유념해 둔다는 게 NYT의 지적이다.

NYT는 "테러 공격이 있기 전에는 여객기 승객들이 보안상 위험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비행은 불안해하며 견뎌내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휴가의 연장이었다"라고 개탄했다.

美 국민들 애국심 고양도…'미국 테마' 상품 인기

물론 9·11 테러가 미국인의 삶에 부정적인 변화만 불러온 건 아니다. WP는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사랑'을 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고 전했다.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인근에서 행인들이 대피하는 모습. 2021.09.09.

[뉴욕=AP/뉴시스]지난 2001년 9월11일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인근에서 행인들이 대피하는 모습. 2021.09.09.

보도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희생된 여객기 승객들은 막 보편화하던 휴대전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이 이들의 유언으로 남았다.

WP는 "이런 음성 메시지는 9·11 당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디지털 기록이 됐다"라며 "'사랑해'라는 말로 전화를 끊는 일의 중요성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줬다"라고 평했다.

지인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라 애국심도 한층 고양됐다고 한다. 미 언론 복스는 9·11 이후 미국 내 이른바 '애국 소비' 증가를 조명했다. 비극 극복을 위해 소비와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정치인들의 메시지에 미국인들이 호응했다는 것이다.

복스는 특히 "미국 국기를 테마로 한 상품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을 목격했다"라며 "기업들은 애국심을 표출하고자 하는 열망을 이윤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미국 테마 상품 '붐'이 일었다"라고 설명했다.

비뚤어진 애국심, 소수 인종 상대 혐오로 연결

문제는 이런 애국심이 백인 우월주의 또는 소수 인종 혐오라는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ABC7은 이와 관련,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살만 아잠이라는 한 중동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실었다. 아잠은 9·11 테러 이후 자신의 삶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하던 친구 부모님, 소방관, 경찰관들을 위한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매우 감성적인 시간이었다"라며 "(그 후) 어느 날 모스크 바깥을 걷는데 한 트럭 운전자가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라고 했다.

지난 1980년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발비르 싱 소디라는 미국 시민은 인디펜던트지에 "9·11 전까지 미국에서 우리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증오에 관해서는 1%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한편 지난해 코로나19 전세계 확산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9·11 테러 이후와 유사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간지 와이어드는 코로나19로 인한 통행 제한과 체온 측정 등 조치를 주목했다. 9·11 테러 이후처럼 통제와 감시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8월 연방수사국(FBI)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에선 총 7700건 이상의 증오 범죄 사건이 보고됐다. 이는 2019년보다 약 450건 증가한 수치로, CNN은 "미국 내 증오 범죄 보고가 지난 12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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