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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승만이 떡은 무슨 떡인고 하니…"

등록 2021.09.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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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만담집' 표지(사진=한상언 제공)2021.09.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만담집' 표지(사진=한상언 제공)2021.09.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쌀가게를 했다. 옆집은 방앗간이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까지 명절을 앞두고 쌀집과 방앗간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어느 집이든 명절 준비는 가장 먼저 쌀독에 쌀을 채우고 명절에 쓸 떡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면 대목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높게 쌓아둔 쌀가마와 방아를 찧기 위해 방앗간에 줄을 세워 늘어서 있던 쌀을 담은 양재기들이 떠오른다.

먹을 게 흔한 요즘에는 명절이라고 집집마다 떡을 만들지는 않고 대부분 마트에서 사다 먹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떡은 대개가 마트에서 파는 것들뿐이다. 추석에 먹는 송편이나 설에 떡국을 끓이기 위한 가래떡,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팥을 넣어 만든 시루떡, 백일잔치나 돌잔치에 먹는 백설기 정도가 머리에 떠오른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떡을 만들어 먹었다. 사용되는 재료와 생김새, 요리법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했다. 만담가 신불출이 한국전쟁 직후 북한에서 발행한 ‘만담집’(1956, 국립출판사)을 보면 떡과 김치를 가지고 재미난 입심을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든 네 가지나 되는 떡을 꿀떡이나 팥떡이니 하는 ‘-떡’자 붙은 것에서 부터 ‘-병’ ‘-편’ ‘-단’ ‘-단자’ ‘-리’ ‘-기’ 붙은 것으로 구분해서 읊어 댄다. 리듬감도 대단하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다는데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떡과 관련된 신불출의 만담은 떡 타령으로 이어진다.

“정월 보름 달떡이요, 이월 한식 송편이요, 삼월 삼질 쑥떡이요, 사월파일 느티떡이요, 오월 단오 수리치떡이요, 유월 유두 밀 젬병이요, 칠월칠석 수단(水團)이요, 팔월가위 오리송편이요, 구월구일 국화떡이요, 시월상달 무시루떡이요, 동짓달엔 새알심이요, 섣달에는 골무떡이로다. 먹기 좋은 꿀설기, 보기 좋은 백설기, 시금 털털 증편인데 두 귀 발짝 송편이요, 세 귀 발짝 호만두요, 네 귀 발짝 인절미로다. 키 크고 싱거운 흰떡이요, 의좋은 개피떡에 시앗 본 셋붙이며 글방도련님 필랑 떡과 각 집 아씨 골무떡과 세살 둥둥 타례떡에 춘방사령 절편이요, 도감포수 송기떡인데 대전별감 색떡이로구나….”

북한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그 당시 북한 당국이 강조한 농업의 협동화를 노래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마무리짓는다.

“승만이 떡은 무슨 떡인고 하니 달라에 눈깔이 뒤집힌 매국 역적 놈이라 나라 판 돈은 꿀떡이요, 총칼만 가지면 다 될 줄 알고 제멋대로 날뛰는 놈이니 하는 짓은 모두 개떡이요, 남북 3천만 인민이 용서치 않을 테니 처먹고 죽을 건 양떡이요, 제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가 자빠질 땐 모두 벌떡 벌떡이로구나….”

1907년 서울에서 출생한 신불출은 1920년대 후반 취성좌를 통해 연극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배우이자 극작가로 재능을 꽃피우던 그는 혼자 무대에 서서 좌중을 휘어잡는 입담으로 명성을 얻었다. 만담이니 난센스니 스케치니 하는, 그 당시 스탠딩 코미디의 1인자로 그의 목소리는 레코드에 담겨 전국으로 그 이름을 알렸다.

해방 후 좌익진영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6년 6·10만세운동 기념행사에 나와 만담 도중 우익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었고, 그의 만담이 연합군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미군정에게 기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인 1946년 가을 북한행을 선택해 그곳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북한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월북 후 신불출만담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을 육성했다고 하는 걸 보면 사회주의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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