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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라도 여성 연대는 계속된다…'김이박'

등록 2021.09.16 18: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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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2021.09.16. (사진 = 달과아이극단 ⓒ박태양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2021.09.16. (사진 = 달과아이극단 ⓒ박태양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존중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타인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김이박')는 그 존중에 대한 태도를 연대로써 드러낸다. 그간 사회에서 여성은 연대의 대상이 아니었다. 약자로 보호하거나 편견 또는 혐오의 상대로 여겨져왔다.

1976년과 1992년에 각각 태어나 1992년과 2008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들의 이야기인 '김이박'은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도 여성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톺아본다.

'김이박'은 한국의 3대 성씨다. 그 만큼 많은 익명의 여성을 뜻한다. 70년대에 태어났건, 90년대에 태어났건, 각자 개성이 무엇이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한국 여성들에겐 지상과제였다. 20년이 지나도 교사는 성희롱을, 학교 주변 남성들을 성추행을 일삼는다.

굵직한 하나의 서사가 없는 이 연극은, 시대가 흘러도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는 현상을 나열한다. 물리학 이론인 '불확정성의 원리'가 주요 모티프다. 고등 양자역학에서의 기본적인 원리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김이박은 모르는 사이에도 나와 우주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 우주와의 상호작용은 20세기 여고생이든, 21세기 여고생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로 인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또 학교가 달라지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김이박은 거듭 절망도 한다.

그간 낭만화되고 대상화된 여자고등학교라는 사회의 이면을 과장하거나 차갑게 보지 않고, 균형감 있게 직시하는 점도 '김이박'의 매력이다. 현실적인 개인적 '특수한 상황'이 그래서 모두의 일반적인 기억이 되고 보편성까지 획득한다.

무엇보다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피해를 전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존중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태도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창작진은 안다.

[서울=뉴시스]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2021.09.16. (사진 = 달과아이극단 ⓒ박태양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2021.09.16. (사진 = 달과아이극단 ⓒ박태양 제공) [email protected]

그 태도는 설득이 아닌 교감이다. 같은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기보다, 같은 고통을 알고 있다며 토닥거리는 포옹. 1976년과 1992년을 각각 살아간 김이박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김이박들도 안고 가겠다는 의지. 마지막 장면에 2021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2005년생이 객석에서 등장한다.

배우 백소정, 최희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발화와 몸짓으로 2인극의 매력을 만개한다. 대부분을 비워낸 무대에서 12개의 전구만으로, 드라마의 상승과 하강을 만들어내는 이래은 연출은 세련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연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데도 보탬이 된다.

촛불집회 등 실제 사실들을 곳곳에 알맞게 배치한 이오진 작가의 대본은 촘촘하다. 액팅 코치로 나선 장재키 JMI신경과학예술원장 덕에 감정선이 풍부해졌다.

시각적인 것 못지 않게 청각적인 자극도 훌륭하다. 특히 이아립 '위 아 더 유니버스', 무키무키만만수 '방화범', 황보령 '돌고래 노래', 마돈나 '익스프레스 유어셀프' 등 다양한 은유를 간직한 명곡들이 관객 귓가를 수놓는다.

대중음악은 저마다의 추억으로 호감 순위가 나뉘는데 누군가에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나 세계'가 선봉에 섰을 듯하다. 지난 2016년 이화여대의 학내 시위 현장에서 투쟁가 대신 이 곡이 울려퍼졌을 때, 누군가는 '젊은 세대의 아침이슬'이라고 명명했다. 섹슈얼리티를 내세우는 대신 꿈, 희망, 용기 등을 담은 곡. 연대의 노래로 더할 나위 없다.

'김이박'은 이번이 재연인데, 매진 행렬을 기록 중이다. 소셜 미디어엔 팬 아트도 상당수 공유되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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