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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냐 재산권이냐…'왕릉 앞 아파트' 난감하네

등록 2021.10.24 11:00:00수정 2021.10.24 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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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무허가 아파트" vs 지자체 "통보 없었다"

'아파트 철거' 국민청원에 20만 넘겨…반대 청원도

건설사 개선안엔 높이 조정 빠져…"디자인만 변화"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김포 장릉 인근 인천 검단 아파트 불법 건축과 관련해 논란이 계속된 21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릉(사적 제202호)에서 문제의 검단 신도시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 2021.10.21.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김포 장릉 인근 인천 검단 아파트 불법 건축과 관련해 논란이 계속된 21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릉(사적 제202호)에서 문제의 검단 신도시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 2021.10.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와 관련한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문화재청과 인천 서구청, 건설사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문화재청이 건설사 세 곳을 고발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건설사들은 문제가 되는 아파트 높이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아파트를 철거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수분양자들은 피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문화재청-지자체-건설사, 책임 떠넘기기

인천 서부경찰서는 해당 아파트 불법 건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인천 서구청 주택과, 건축과, 문화관광체육과, 인천시 종합건설본부, 서구 신현원창동 주민센터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8일 장릉 인근에 아파트를 건설한 대방건설, 대광건영, 금성백조 3개 건설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건설사들은 20~25층의 골조공사를 마친 상태다.

문화재청은 2017년 1월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고 고시한 바 있다. 2014년 인천도시공사로부터 택지 개발 허가를 받은 땅을 산 건설사들은 2019년 인천 서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공사를 시작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릉이 있는 김포시에는 문화재청의 강화된 규제가 통보됐지만, 인천 서구청엔 이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구청 측은 해명했다. 양 기관의 소통이 미흡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강화된 규제를 알고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철거하라" vs "유네스코서 빼라"

문화재 경관을 훼손하는 해당 아파트들의 철거를 촉구하는 여론이 높다. 김포 장릉은 조선 16대왕 인조가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능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장릉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국민들은 아파트 건설 논란이 해결되지 않으면 나머지 39기도 세계유산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답변 충족 요건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글쓴이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하는데다 심의 없이 위법하게 지어졌으니 철거돼야 하는 게 맞다"며 "그대로 놔두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로 남아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되는 내용의 청원도 올라왔다. '김포 장릉의 세계문화 등재 해제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인은 "이 아파트는 당연히 허가아파트"라며 "2021년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20층 3400세대 대단지 아파트를 2년 넘도록 아무도 모르게 불법으로 완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청이 상당한 기간 동안 불법건축물 상태를 적발하지 못하고 이를 방치한 경우 권리남용 금지, 공소시효의 법리 등을 유추해 시정명령을 행사할 권한이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의 조선 왕릉에 대한 설명은 '조선 왕릉 40기'에 대한 설명이지, 김포 장릉만의 고유한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개선안 내랬더니…건설사들 "야외 정자 설치하겠다"

철거와 존치,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상황에서 개선안을 내라는 문화재청에 요구에 건설사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 답을 내놨다. 애초 문제가 된 높이는 그대로 두고, 디자인만 바꿔 왕릉과 어울리게 짓겠다는 것이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3곳의 건설사는 아파트 마감 색상을 장릉을 강조하는 색으로 하고 야외에 육각 정자를 두겠다거나, 연못·폭포를 조성하고 문인석 패턴을 도입하는 한편 문화재 안내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개선안에 담았다.

박 의원은 21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건설사들이 사태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이는 유지한 채 색깔과 디자인만 바꾸겠다는 것은 근본을 외면하는 격"이라며 "문화재청은 빠른 시일 내에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국감에서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측과 별도 추가 협의를 통해 조선왕릉 세계유산 지위 유지와 가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현재 진행 중인 소송 등의 결과를 고려해 역사문화환경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내년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들로서는 사태가 걷잡을수 없이 확산하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아파트가 철거된다면 이들의 재산피해가 상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커뮤니티나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 온라인 카페 등에는 "내년 입주계획에 맞춰 현재 살고 있는 집도 미리 처분하려고 내놓은 상태다", "입주자들은 보상도 보상이지만 입주에 맞춰 이전 집 처분이나 대출 등 진행이 많이 돼 있는 상태라 어떤 보상으로도 위안이 안 될 것이다"는 등의 하소연이 올라오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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