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내 아들…살려다오, 살려다오"…통곡의 5·18묘역
5·18유족들, 기념식 하루 앞두고 민주묘지서 추모제
고 이정연 열사 어머니 "내 아들, 무슨 죄가 있다고"
고 윤승봉 열사 동생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울분"
고 김영철 열사 아내 "남편 넋, 올해 기필코 기릴 것"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2) 여사가 오열하고 있다. 2022.05.17 [email protected]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하는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피붙이와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흰 소복을 입은 유족들은 무거운 발을 한 걸음씩 떼며 일 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의 묘소로 향했다. 묘소 앞에 도착한 가족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이내 주저 앉았다.
묘비에 머리를 묻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흰 장갑은 눈물로 흠뻑 젖어 깊은 주름이 패인 손등이 비쳐 보였다.
고(故)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2) 여사도 일 년 만에 만나는 아들의 묘소 앞에서 가슴앓이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를 연신 외치는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묘소 허공에 메아리쳤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윤승봉 열사의 동생 윤연숙(68) 씨가 묘비를 닦고 있다. 2022.05.17 [email protected]
생떼같은 자식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온 지 벌써 42년. 5월마다 이 열사의 흔적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꺼내야만 하는 구 여사의 마음은 생채기와 멍으로 가득하다.
구 여사는 "정연이는 '선조들이 남긴 잡초를 내가 죽음으로서라도 뽑으러 가오'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며 "어린 자식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야 했느냐"라고 하염없는 울분을 토해냈다.
고 윤승봉 열사의 여동생 윤연숙(68)씨도 윤 열사의 제단에 소주를 올리며 억울한 죽음을 기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소주를 따르던 윤씨는 "오빠가 무슨 죄가 있어 계엄군에 잡혀가 그렇게 다쳐야 했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윤 열사는 1980년 5월 20일 들끓는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한 목소리를 보태기 위해 시민행렬에 참가한 뒤 계엄군에 체포당했다.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그는 보름이 지나서야 광주교도소에 수감돼있다는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가족들의 간곡한 청원 끝에 석방됐지만, 이미 윤 열사의 몸은 모진 고문 끝에 초주검이 된 상태였다. 윤 열사는 이듬해 4월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 김영철 열사의 아내 김순자(70) 여사가 묵념하고 있다. 2022.05.17 [email protected]
고 김영철 여사의 아내 김순자(70)씨는 올해 비로소 남편을 제대로 기릴 수 있게 됐다며 묘소 앞에서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묵념했다.
김 열사는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살다 고 윤상원 열사를 만나 함께 '들불야학'을 꾸리고 활동했다. 윤 열사를 따라 도청 사수 최후의 항쟁에 참여했던 그는 계엄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으로 뇌 손상을 입었다. 내란음모 수괴 혐의까지 뒤집어 쓴 그는 1983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으나 후유증 끝에 1998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그동안 남편의 행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수 년째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해왔다. 그 결실이 이달 말 수기와 평전 형태로 맺어질 수 있게 되면서 남편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됐다.
김 여사는 "비로소 남편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돼 다행이면서도 먹먹하다"며 "남편뿐만 아니라 조명받지 못한 많은 열사들이 있다. 이들의 넋이 제대로 기려지고서야 5·18이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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