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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당국 뒷짐, 루나 사태 피해 키웠다

등록 2022.05.23 11:00:00수정 2022.05.23 15: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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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당국 뒷짐, 루나 사태 피해 키웠다


[서울=뉴시스] 김경택 기자 = 국산 가상자산(암호화폐) 루나·테라USD(UST) 얘기다. 루나와 UST가 동반 폭락하면서 국내에서만 30만명에 가까운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루나 사태 이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루나와 UST를 보유한 투자자 수, 금액별 인원수, 고액 투자자 수 등 자료를 요청해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악한 현황 등을 토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2024년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자산 기본법은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금융당국이 현재로서는 현황 파악만 할 뿐 직접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는 얘기다. 까다로운 투자자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는 상장 주식이나 펀드·보험 등 제도권 금융상품과 달리 암호화폐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주식시장의 경우 특정 기업의 주가가 급등락하거나 이상 거래 등이 감지되면 관련 규정에 따라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주가조작 행위 등이 있었는지 조사·감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는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 지난해 말 암호화폐 관련 법률인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는 거래소 등 암호화폐 사업자의 자금 세탁 행위만 감시할 수 있을 뿐 투자자를 직접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현재까지 거래량 기준 상위 8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등록 폐지를 당한 암호화폐 수는 541종에 달했다. 무려 500번이 넘는 경고음이 울릴 동안에도 금융당국은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여기며 투자자 피해 방지를 위한 장치 마련에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했고, 현안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금융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을 동안 투자자들의 피해는 끊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결국 루나 사태까지 터지고야 말았다.

사고가 터지자 허둥지둥 대는 금융당국이 속터지지만 규제 마련은 빨라도 몇 년 후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이 제정돼 시행되기 전까지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여전히 투자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투자의 책임은 결국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되는 문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고,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특별히 유의할 수 있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엄연한 금융당국의 책무다. 비록 관련 법안이 미비했더라도, 금융당국의 소관이 아니었더라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경고의 목소리라도 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가격이나 거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정과제를 통해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을 약속한 상황이다. 제2의 루나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사후 수습책보다 사전 예방책이 더 적극적으로 법안에 담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금융당국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금융상품이 유발할 수 있는 위험성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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