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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아티초크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등록 2022.05.23 05:00:00수정 2022.05.23 1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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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EP '실버 라이닝스' 호평

버클리 음대 학생들로 구성됐던 美 밴드 '더 영 리퍼블릭' 출신

2011년 니케아라는 활동명으로 데뷔

[서울=뉴시스] 아티초크. 2022.05.23. (사진 = 칠리뮤직 코리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아티초크. 2022.05.23. (사진 = 칠리뮤직 코리아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실버 라이닝스(Silver Linings)'. 구름 가장자리로 새어나오는 빛을 가리킨다.

'실낙원'의 영국 시인 존 밀턴이 자신의 작품 '코머스'(1643)에서 처음 쓴 표현 '에브리 클라우드 해스 어 실버 라이닝(Every cloud has a sliver ling)'에서 나온 말.

'어떤 구름이라도 그 뒤편은 은빛으로 빛난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좋은 면이 있다'는 것. 제니퍼 로런스·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영화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2012)이 이 말을 따와 제목을 지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아티초크(Arttichoke)도 최근 발매한 EP 제목으로 '실버 라이닝스(Silver Linings)'를 내세웠다. 제작부터 발표까지 약 2년이 걸린 앨범으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버클리 음대를 다녔고, 학교 친구들과 8인조 챔버 팝(Chamber Pop·실내악 요소를 도입한 팝) 밴드 '더 영 리퍼블릭(The Young Republic)'를 결성해 건반을 맡았다.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 미국인이었던 이 팀(중간에 한국계 연주자가 탈퇴)은 영국 BBC 라디오 '라이브', 영국의 최대 규모 음악 축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 출연하는 등 한때 '라이징 밴드'로 통했다.

이 팀을 나와 뉴욕에서 광고음악 회사에 다니던 아티초크는 지난 2011년 니케아(Nickea)라는 이름으로 국내 데뷔했다. 중저음과 명료한 선율, 우아한 화음이 부드럽게 엉킨 '네이키드(Naked)' 같은 곡은 고급 팝이었지만 그녀의 음악은 인디 신(scene)에서도 독특하다는 평을 들었다.

2013년 싱글을 내고 한동안 음악 활동을 하지 않던 그녀는 2020년 아티초크로 돌아와 첫 번째 정규 앨범 '탕탕!'을 쐈다. 이번 EP는 2년만에 발매하는 것이다. 최근 목동 칠리뮤직 코리아에서 만난 아티초크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티초크는 고급 채소잖아요. 어떻게 지은 활동명인가요?

"친구랑 활동명을 놓고 이야기하다가 (인디 밴드명인) '브로콜리 너마저' 얘기가 나왔어요. 아스파라거스를 비롯 여러 이름이 계속 나왔는데, 아티초크가 귀여운 느낌이 들고 좋았어요. 아티초크에서 모양을 따온 유명 램프도 있더라고요. 레이어가 여러겹이 쌓여 있어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활동명을 바꾼 게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끼쳤나요.

"니케아 때와는 다르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실버 라이닝스'라는 앨범 제목은 어려움을 견뎌냈다는 뜻이 담긴 거 같아요.

"이번 앨범엔 좀 더 개인적인 내용을 담았어요. 지난 앨범은 좀 더 픽션에 가까웠거든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면서 깨달은 것도 있고, 조금 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이 터널 끝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실버 라이닝스'가 그런 뜻을 잘 담았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건 어떤 부분입니까?

"니케아로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활동하지 않은 텀이 길었어요. 2013년에 싱글을 내고 활동이 없었죠.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일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지났더라고요. (앰비언트 사운드가 인상적인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도망치는 너에게'의 가사에서 '어느덧 사라지고 있는 이름 / 몰랐었지 세상이 바뀌고 있는 줄'이 제 상황을 노래한 거예요."

-터널 끝에 다다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눈이 뜨였다고 할까요. 제 삶을 돌아보니까, 현실 도피만 해서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니까 아무 것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너무 당연한 일이고, 말로 들으면 잘 알 거 같은데, 그걸 체감하는 건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싱글로 먼저 공개됐던 첫 트랙 '서랍 속 우린'은 아련한 곡입니다.

"2013년에 쓴 곡이에요. 연애 관련 내용인데, 좋은 시기가 있었고 한때는 굉장히 가까웠던 사이임에도, 지금은 그 상대방이 뭐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을 담았어요."

-'숨바꼭질'은 원맨밴드 후추스와 함께 했습니다.

"이 곡은 조금 더 픽션에 가까운 곡이에요. 연극적인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관계를 떠올렸고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의 좋은 기분을 내려고 했습니다."

-'도망치는 너에게'는 앰비언트 요소가 도드라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떠올라 쉽게 쓴 곡이에요. 무겁지 않게 단순하면서도 마음에 더 와닿는 곡을 앨범을 넣고자 했는데 그런 곡이에요. 지난 앨범은 장식적이고 무거운 편곡이 주를 이뤘다면 이 곡은 가볍게 털어내되 진심을 담았어요. 다른 요소들은 지우고 목소리가 오롯이 들리도록 만들어 봤습니다."

[서울=뉴시스] 아티초크. 2022.05.23. (사진 = 칠리뮤직 코리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아티초크. 2022.05.23. (사진 = 칠리뮤직 코리아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내 음악을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네요.

"예전엔 사람들 반응에 전전긍긍하는 유리 멘털이었어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 같아요. 이젠 어차피 음악을 계속 할 건데 누가 뭐래도 상관이 없다는 해탈의 상태예요."

-그런 마음가짐이 밝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영향을 끼친 건가요?

"그쵸. '도망치는 너에게' 같은 경우도 '너에게'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저에게' 하는 이야기예요. 도망치지 않고 싶고, 이제 직시하고 싶은 그런 마음인 거죠."

-'어떡해'는 이번 앨범 다섯 트랙 중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담은 곡이라고요.

"뉴욕에 있을 때 경험을 담았어요.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졸업을 하고 나서 직업을 못 구한 상황이었고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죠. 모두들 굉장히 바쁜 도시에 저 혼자 아무 것도 하는 것 없는, 한가함이 주는 우울감을 담았어요. '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 햇빛은 날 지워버렸어 / 아무 쓸모없이 하루하루 가'라는 가사가 제 마음이었어요."
 
-응원가라고 설명한 '초라한 날 위한 멜로디'가 이번 앨범을 압축하는 곡 같기도 합니다.

"진짜 터널 끝에서 나가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자이 구루 데바 옴(Jai Guru Deva om·산스크리트어로 '선지자여 깨달음을 주소서'라는 뜻)은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라임을 차용했어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영화음악을 자연스레 듣게 됐죠. 왕자웨이(王家卫·왕가위) 감독 영화를 좋아했는데 팝송이 많이 삽입돼 팝송을 주로 듣다가 차차 넓어졌죠. 장궈룽(張國榮·장국영)도 특히 좋아했죠. 그러다 베트남 영화 '씨클로'를 통해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을 듣게 된 거예요. 이후 록을 듣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죠. 중앙대 음대 작곡과에 갔다가 클래식을 싫어하지 않지만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더 영 리퍼블릭 활동을 하게 된 거고요.

"벨 앤 세바스찬, 아케이드 파이어 같은 음악을 한 팀이에요. 밴드에 플루트 플레이어, 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도 있었죠. 팀 내 드라마도 많고 지금 생각하면 재밌었어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쉽게 만든 팀이에요.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인디록을 공통적으로 좋아하니까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소속사 없이 저희끼리 미국 횡단도 했어요. 그 때 잠시 함께 활동했던 친구가 베이스(이진우·Jonathan Lee)를 연주해줬죠."

-그런데 한국에선 어떻게 데뷔를 하시게 된 건가요?

"밴드를 탈퇴한 이후 광고음악를 하려고 했어요. 밴드가 내슈빌이 거점이었는데 회사에서 일하려고 뉴욕에 갔죠. 광고 음악 회사에 들어갔는데 당시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임자들이 다 그만둬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죠.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힘들어 일이 없었고 그래서 앨범을 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다시 보스턴에 가서 녹음을 하고 한국 소속사에 연락을 해서 2011년에 니케아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죠."

-설렘과 부푼 마음이 컸을 거 같아요.

"한국 가서 잘해봐야지라는 생각이 컸죠.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욕심이 생겨서 그대로 눌러 앉았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어요. 인디에서도 제 스타일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리뷰를 찾아봐도 '이상하다'는 식으로 쓰는 분들도 많았고요. 당시 밴드가 있어 '톱밴드2'에도 출연했는데 하필이면 (관록의) 타카피랑 붙어서…. 하하."

-음악을 하지 않는 동안 어떤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까?

"회사를 바꾸기도 하고, 제 곡이 아닌 곡들을 만들기도 하고. 좀 더 대중적인 것들을 해볼까 고민도 있었고. 그런데 해보니까, 그냥 제 길을 가는 게 맞더라고요."

-이번 앨범을 통해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도망치는 너에게'라는 곡처럼, 저에 대한 다짐이에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곡을 계속 연달아 내야겠다는 생각. 제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니까 최대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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