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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항공사진 기증자 "5·18 숨은 주역 찾길 바란다"

등록 2022.05.29 10: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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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항공사진 기증한 사진 기사 김영주(77)씨

상무충정작전 당시 계엄군 진입로 규명 핵심자료 기대

촬영 중 505보안대 압송·시위대 향한 헬기사격도 목격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1980년 당시 옛 전남도청의 사진촬영기사로 근무했던 김영주(77)씨가 지난 4일 전남 완도의 자택 인근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옛 전남도청의 항공 사진 등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2.05.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1980년 당시 옛 전남도청의 사진촬영기사로 근무했던 김영주(77)씨가 지난 4일 전남 완도의 자택 인근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옛 전남도청의 항공 사진 등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2.05.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열흘 간의 항쟁 동안 음지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했던 조연들도 반드시 조명되길 바랍니다."

김영주(77)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촬영한 옛 전남도청의 항공 사진을  5·18기념재단에 기증하며 이 같이 당부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는 이달 4일 5·18재단에 항쟁 직후인 1980년 6월 초 촬영한 옛 전남도청 항공 사진 필름 원본, 1993년 전일빌딩에서 촬영한 옛 전남도청 정면 사진 필름 원본 등을 기증했다.

그가 기증한 사진들은 지금껏 세상에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5·18 당시 '핏빛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특히 항공 사진은 1980년 5월 27일 계엄사의 상무충정작전 당시 옛 전남도청에 계엄군들이 진입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씨는 28세였던 1973년부터 전남도청 소속 사진 촬영 기사로 근무했다. 그는 5·18 항쟁이 끝난 1980년 5월 27일 부임한 당시 김종호 전남도지사의 지시로 항공 사진을 촬영했다.

5·18 직후 뒤숭숭한 광주·전남 지역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하는 도정 홍보 자료에 쓰일 사진이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소방헬기를 타고 같은 해 6월 초 옛 전남도청 일원, 전남 여수·순천 산업단지 등을 촬영했다.

그는 5·18 당시에도 옛 전남도청에 출근하며 시민들의 치열했던 열흘 간의 항쟁을 생생히 지켜본 관찰자이기도 하다. 계엄군의 금남로 집단 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에는 직접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21일 오후 2시  당시 전남매일신문사 앞 허공에서 총을 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난 직후 시민들이 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겁에 질린 김씨 또한 곧장 양림동 방면으로 몸을 피했다.
[광주=뉴시스] 5·18 이후 촬영된 1980년 당시 옛 전남 도청의 항공 사진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2.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5·18 이후 촬영된 1980년 당시 옛 전남 도청의 항공 사진 (사진 = 5·18기념재단 제공) 2022.05.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씨는 신군부의 무소불위 공포 통치가 항쟁 직후에도 계속됐다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씨는 전남 동부권 산단 항공 사진 촬영 당일 505보안대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말고 당장 광주로 복귀해 조사를 받으라는 명령이었다.

결국 군인 트럭을 통해 압송된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곧장 구금됐다.

조사관은 고압적인 말투로 '당국의 허가 없이 헬기를 띄우고 사진을 촬영한 점이 문제가 됐다'며 경위서를 쓰라고만 했다. 도지사의 지시에 따랐다고 해명했지만 '다 알고 있으니 바른대로 말하라'는 협박 만이 돌아왔다.

공포에 사로잡혀 경위서를 세 차례나 고쳐 쓰며 밤을 꼬박 샌 그는 도청이 구명에 나선 이튿날 풀려날 수 있었다. 김씨는 맡은 바 일을 했을 뿐이었지만 막무가내로 몰아세웠던 신군부를 향한 울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항공 사진 기증 취지를 5·18 당시 활약한 알려지지 않은 숨은 조연들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거듭 역설했다.

김씨는 "계엄군이 물러난 옛 전남도청을 지키던 사람들은 길가의 넝마주이들이었다. 적게는 20대부터 많게는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넝마주이 100여 명이 항쟁지도부의 거점이 된 옛 전남도청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경비를 섰다"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42년 동안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모든 광주시민이 제 몫을 다했던 열흘 간의 항쟁이었지만, 넝마주이마저 옛 전남도청을 지켜보겠다고 본분을 다했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이들을 위해 항공 사진을 기증했다.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같은 소시민들의 행적이 반드시 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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