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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영화대화’

등록 2022.07.02 06:00:00수정 2022.07.02 07: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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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대화 (사진=잎새달 제공) 2022.06.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대화 (사진=잎새달 제공) 2022.06.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책방에 ‘영화대화’(김사겸 구술, 김도연 지음, 잎새달, 2021)라는 제목의 기증도서가 배달되어 온 것은 지난달 13일이었다. 이 책은 1935년생 영화감독과 1981년생 씨네필이 나눈 대화를 정리해 놓은 것으로, 원로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생님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 나에게는 남달리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책을 받아 들고 우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소포의 송장을 보니 책을 보낸 김도연 선생의 전화번호 일부가 지워져 있었다. 보통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과는 안면이 있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 선생과는 서로 인연이 없었다. 책을 받은 지 보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연락처를 알 수 없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즐겁게 책을 읽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으로는 1962년 알프레드 히치콕과 프랑스와 트뤼포의 일주일간의 대화를 책으로 묶은 ‘히치콕과의 대화’가 유명하다. 그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은 영화평론가 정성일도 자신이 존경하는 임권택 감독과의 대화를 기록한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를 2003년에 발간한 적이 있다.

트뤼포와 정성일의 기획은 기본적으로 영화사에서 큰 획을 그은 히치콕이나 임권택과 같은 감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류의 책은 영화를 공부하거나 영화감독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영화감독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렇게 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영화의 흥미로운 장면들에 대한 감독의 실감 나는 설명을 읽는 재미를 준다. 그런 재미야말로 이런 식의 기획이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획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감독은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름값 있는 감독과 평론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대화’의 김사겸 감독은 ‘그대 가슴에 다시 한번’(1971), ‘창수의 전성시대’(1975) 두 편의 극영화와 10여 편의 기록영화와 문화영화를 연출한 정도의 영화 이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두 편의 극영화도 한국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의 목록에 들어가는 그런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충무로를 거쳐 간 수많은 감독 중 특별하지 않은 한 명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대화’를 읽으며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듣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다. 트뤼포와 정성일의 책이 걸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그것을 만든 사람으로부터 듣는 일종의 예술 창조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라면, ‘영화대화’는 걸작을 만든 사람 주변에 존재한 많은 조력자들의 눈으로 영화 현장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김사겸 감독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눈으로 본 일제강점기 대표적 영화감독 이규환,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오발탄’의 감독 유현목,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던 ‘바보들의 행진’의 감독 하길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나와 같은 영화사 연구자들에게는 당대의 풍경을 통해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시대를 간접 체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영화사의 중요한 순간의 비사를 이를 통해 알게 된다.

거장들의 예술 활동을 증명하는 일종의 큰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영화사 연구의 필수이다. 하지만 큰 역사에 가려진 작은 역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역사는 천재적인 인물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렇다.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조력자들의 도움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김사겸 감독과 김도연 선생의 대화를 수록한 ‘영화대화’는 영화감독 김사겸의 개인적 체험과 함께 한국영화사를 구성하는 작은 역사의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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