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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재림 감독 "억울했어요…그래도 희망을 얻길 바랐죠"

등록 2022.08.04 0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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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비상선언'으로 5년만에 복귀해

영화 내외 코로나 사태 영향 크게 받아

전작 '더 킹'은 지난 대선 때 소환되기도

"자꾸 의도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억울"

"재난이 주는 두려움 극복하는 이야기"

[인터뷰]한재림 감독 "억울했어요…그래도 희망을 얻길 바랐죠"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전 좀 억울해요. 다음에는 정말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영화를 만들 겁니다."

한재림(47) 감독에게 예지력에 관해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감독에게 예지력이라니 무슨 뜸금 없는 소리냐 싶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꽤나 그럴싸한 얘기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무속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경선 토론 도중 윤 후보 손바닥에 조그맣게 쓰인 '왕'(王)자가 의도치 않게 공개된 게 발단이 됐다.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미신을 믿고 이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후 윤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이른바 '무속' 관련 질문을 수차례 받고 해명해야 했다.

당시 소환된 게 한 감독의 영화 '더 킹'(2016)이었다. 이 작품에는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한강식 검사'가 대선을 앞두고 어느 후보 라인을 탈지 정하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한강식은 무당이 점찍은 후보 라인을 타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더 큰 권력을 누리게 된다. 이에 검사 출신인 윤 후보와 한강식을 겹쳐보며 한강식 캐릭터가 윤 후보를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냐는 얘기가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나온 것이다.

"장르영화를 택했기 때문에 혹시나 또 그런 일에 휘말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 킹' 이후에 만들기 시작한 작품이 지난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이다. '비상선언'은 비행기 테러로 발생한 재난 상황을 그리는 작품. 보통 비행기 소재 영화는 기체 납치와 폭파를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 기내에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난 2년여 간 겪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떠오른다. 이에 또 한 번 한 감독이 코로나를 예견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우스개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것이다.

"캐스팅이 다 끝나고 촬영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진 거예요. 그렇다고 영화를 안 할 수도 없잖아요. 화도 났죠. 물론 코로나 사태라는 게 전 인류가 겪은 일이고, 저에게 벌어진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합니다만 좀 억울했어요. 전 제 영화로 관객에게 새로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어디서 본 것 같은 것 말고요." 코로나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한 감독의 '비상선언'은 영화가 완성된 뒤에도 개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 감독 영화는 현실과 묘하게 맞닿으면서 얄궂은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인터뷰]한재림 감독 "억울했어요…그래도 희망을 얻길 바랐죠"


다만 우여곡절 끝에 관객을 만난 '비상선언'은 단순히 코로나 사태를 환기한다는 평가 외에도 재난영화 장르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기내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직전까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출력이 뛰어나고, 관객이 실제로 비행기 안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다양한 방식의 촬영이 재난물의 스펙터클을 높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결정적으로 한 감독이 목표로 했던 것처럼 관객이 그 전에 보지 못한 재난물이기도 하다. 재난영화는 일반적으로 각종 재난 상황의 크기를 반복해서 키워가며 관객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 반해 '비상선언'의 재난은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퍼진 뒤부터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감독은 '비상선언'을 "어쩔 수 없는 재난을 맞닥뜨린 인간이 그것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난이 만든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결국 희망을 얻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희망을 아주 작은 성실함에서 찾고 싶었습니다. 재난 앞에 서면 누구나 두렵죠. 힘듭니다. 모두가 도망가고 싶은 상황에서 우리가 용기를 내서 움직이는 아주 조금의 성실함을 모아간다면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한 감독은 "관객이 이 작품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느끼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이런 메시지에 힘을 싣기 위해 '비상선언'의 연출 포인트를 사실감으로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 비행기 내부와 거의 똑같은 형태의 세트를 만들고, 그 세트를 짐벌 위에 얹혀 비행기가 흔들릴 때의 느낌을 실제처럼 구현하려고 했다. 비행기가 360도 회전하는 장면의 실감을 높이기 위해 촬영진이 배우들과 비행기 세트에 함께 탑승해서 찍었다. 배우들에게도 과장 없이 사실적인 연기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비상선언'이 담아내는 재난이 영화적 재미로 지나가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 존재해달라고 했습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있어 달라고 했죠. 그럴 때 관객이 이들에게서 희망을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 감독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할 정도로 사실적인 연출에 공을 들였으나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특히 영화 후반부 특정 인물들의 선택이 작위적이어서 초중반부에서 보여준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연출이 묻힌다는 지적이 많다. 한 감독은 "그런 반응이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며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초반부를 지나 중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재난영화가 시작되기에 나오는 얘기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이 있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극 중 인물들의 선택을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봐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2005년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장르를 거쳐왔다. '우아한 세계'(2007)는 조폭영화였고, '관상'(2013)은 사극이었다. '더 킹'(2017) 시대극이자 풍자극이었다. 그리고 '비상선언'은 재난물이다. 자신을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한 감독은 "호기심이 많은 감독"이라고 답했다. "하나만 잘하면 더 좋은데, 자꾸 이것저것 하게 돼요. 그래서 관객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의 장르만 파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겠어요. 이걸 하고나면 다른 걸 하고 싶어요.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재밌는 걸 계속 하고 싶어요." 한 감독은 현재 차기작으로 드라마 시리즈 '머니게임'을 촬영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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