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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목소리]하늘의 별이 된 현은경 간호사

등록 2022.08.10 14: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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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화연 경기도간호사회 회장.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2022.08.10

[서울=뉴시스]전화연 경기도간호사회 회장.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2022.08.10

[서울=뉴시스]  전화연 경기도간호사회 회장

 '지금까지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했지?', '앞으로 뭘 해야 하지?' 되뇌이며 지난 3일간을 돌아본다. 지난주 금요일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면서 이천 혈액투석전문 열린의원에서 화재사고가 나 환자와 간호사가 사망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머릿 속이 하얘졌다. 일단 현장에 빨리 가봐야 겠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면서 정신없이 이천으로 달려갔다. 경찰들이 수신호로 차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어 차를 먼 곳에 대고 떨리는 마음으로 현장에 가보니 화재현장 길 건너편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병원건물 쪽을 보면서 넋을 놓고 한참을 왔다 갔다 반복했다.

  사망한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은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으로 이송됐다.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시신을 모셨다는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상황을 수소문했다. 장례식장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단 빈소가 차례질 때까지 지인의 도움으로 앉아서 멍하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간호사 회원들이 속속 모여 함께했다.

  빈소가 차려졌다. 고인의 남편과 엄마, 가족을 만나기 위해 막 휴가를 나온 아들을 보니 더 기가 막히고 가슴이 먹먹했다. 고인이 된 현 간호사는 아들이 휴가 나오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을까, 또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들을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가슴이 저렸다. 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영정 사진 속 단아한 모습의 현 간호사를 바라봤다.

  대한간호협회가 온라인 추모관을 만들고, 추모위원회가 구성됐다. 또 모든 회원들에게 12일까지 추모기간을 알렸다. 장례절차를 의논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오열하는 소리가 났다. 빈소 옆방에는 앉을 힘도 없어 누워서 "은경아"를 연거푸 외치며 오열하는 부모가 있었다. 또 무릎을 꿇고 부모의 손을 부여잡은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의 어깨가 점점 더 낮아졌다.

 이튿날 아침 빈소 영정 사진을 향해 "당신의 환자를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정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편안하게 영면 하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고인의 딸을 안으며 스스로에게 ‘힘들어도 힘을 내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병원 관계자는 유족에게 현 간호사가 의족을 한 환자와 같이 문 앞에서 발견됐고, 환자의 의족을 끼우고 끝까지 돌봤다는 말을 들었다. 환자를 끝까지 돌보는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나는 과연 그런 긴박한 순간에 뛰쳐나오지 않고 나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음 속으로 물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한 숭고한 정신이다.

  많은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조문을 왔다. 현 간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이라지만 의료현장이 환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일까.

  발인날이 됐다. 유족들과 동료간호사들의 울음소리가 좀처럼 그칠 줄 몰랐고 떠나보내는 슬픈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장례식장을 떠나 화장장인 원주 하늘나래원을 거쳐 이천시립추모관까지 동행했다. 영정 사진을 든 채 쓰러질 듯 말듯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옮기는 딸, 그 뒤를 따르는 침통한 얼굴의 아들, 이 착하고 어여쁜 자녀들이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떠난 현은경 간호사. 마음 속으로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라고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이동할 때마다 고인과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사람들의 애통함이 더해졌다. 함께 일한 동료간호사들은 "엄마를 잃은 것 같다"며 흐느꼈다.

  경기도간호사회장으로서 ‘행복한 간호, 건강한 조직’을 슬로건으로 외쳤던 나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현장의 간호사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간호법이 하루속히 제정돼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하늘이 부여한 소명인 간호를, 진정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반드시 실현되기를 현은경 간호사를 떠나보내며 다시 한 번 바래 본다.

  환자를 끝까지 지킨 현은경 간호사 당신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더 좋은 곳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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