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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위반' 사형 선고 故박기래씨, 48년 만에 무죄

등록 2022.09.27 16: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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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측 재심 청구 소송서 무죄 선고

法 "불법 구금, 가혹행위 가능성 인정"

"진술과 압수물 증거로서 효력 부정"

檢은 이례적으로 다시 무기징역 구형

유족 "이제라도 고인 넋 위로하게 돼"

'국보법 위반' 사형 선고 故박기래씨, 48년 만에 무죄


[서울=뉴시스] 김진아 박현준 기자 = 박정희 정부 시절 공안사건에 휘말려 17년간 옥살이를 했던 고(故) 박기래씨가 4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2-1부(부장판사 김길량·진현민·김형진)는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박씨의 유족이 제기한 재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통일운동을 했던 박씨는 1974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국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등과 함께 1970년대 대표적인 공안 사건으로 꼽힌다.

17년간 옥살이를 한 박씨는 1991년 가석방됐고,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박정희 정권의 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고인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수사 과정에서 폭행 등 가혹행위를 했던 만큼 유죄의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 측은 당시 박씨의 법정 증언에 압박이 없었다며 증거로 제시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변호인 도움을 받고 있어 공판조서 등에 담긴 진술 내용도 조작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지난 7월5일 결심공판에서 서울고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박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족 측 주장과 같이 박씨에 대한 체포 구금 행위가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 역시 자행됐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자백의 임의성을 다툴 때는 검사가 의문을 없애려는 증명을 해야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진술 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며 "이 사건 기록은 피고인들이 적법한 영장 없이 불법 체포 구금되고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수사 과정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에서, 검찰이 임의성을 증명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점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당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 등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 가혹행위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뒤의 심리상태가 검찰 조사에서도 계속된 상태로 자백을 의심할만하고, 회유에 의한 허위자백을 밝힌 바도 있다"며 "그런데도 검사는 임의성 증명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피고의 피신조서, 진술서 등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 등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불법 구금 등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계속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불리한 진술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 상태가 연장된 가운데 재판 절차에 이르렀다면 변호인 조력을 받아 공소사실을 부인했더라도 재판 시점에 압박 상태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불리한 법정 진술에 대해 함부로 유죄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선고 이후 유족 측은 "고인이 과거 위법한 수사와 판결로 억울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라도 법원이 현명한 판결을 내려줘 고인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게 됐다"며 "간첩의 자식과 배우자로 힘든 삶을 살았던 유족을 위로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 자체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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