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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투 참전 김용일 중사 유해 확인…가족 품으로

등록 2022.11.30 11: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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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3월 입대 후 70년 만에 귀환

[서울=뉴시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김용일 이등중사(왼쪽)와 고 편귀만 하사의 유해발굴 당시 모습. (사진=국방부) 2022.11.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김용일 이등중사(왼쪽)와 고 편귀만 하사의 유해발굴 당시 모습. (사진=국방부) 2022.11.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하종민 기자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고인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6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인근 마을에 살던 배우자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막내딸의 출생 한 달 만인 1952년 3월 육군에 입대해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전투에 참여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강원도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9사단이 중공군 격돌했던 전투다. 7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했으며,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로 남아있다.

해당 전투에서 9사단은 12차례 공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고인은 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최초 5사단 유해발굴 TF 강훈구 중사가 경사면에서 작은 뼛조각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경사면 아래쪽을 노출하자 개인호에서 웅크린 자세로 가슴 부위에 팔을 모은 모습의 완전유해가 발견됐다.

유해는 머리뼈 위에 철모가 덮여져 있었고, 발뼈에는 전투화 밑창, 정강뼈에는 고무링이 둘러매어 있는 등 발굴 유품이 생전 착용 위치를 모두 유지한 모습이었다. 특히 가슴 부위에 모아진 아래팔뼈 안쪽에서 고인의 성명이 선명히 각인된 인식표가 발견됨에 따라 유해의 신원을 김용일 이등중사로 특정할 수 있었다.

고인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 자택에서 치러진다. 고 김용일 이등중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이날 경기도 부천시 소재의 유가족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번 유해 발굴로 인해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201명의 6·25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또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4명의 전사자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참여가 절실하다"며 "6·25전쟁에 참전하셨으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친인척이 있으시면 국유단 대표번호로 연락 주시거나, 보건소, 보훈병원, 군병원 등에서 실시하는 유전자 시료채취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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