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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짱구 맞잖아"…DNA검사로 58년만 상봉 '장씨 4남매'(종합)

등록 2023.01.31 17:38:43수정 2023.01.31 18: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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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경찰서, 장기실종자 상봉식…1965년 잃어버린 여동생 2명 찾아

부친 사망 후 어머니와 외출했던 여동생들 전차서 손 놓쳐 헤어져

큰 언니가 두 차례 방송 출연하며 동생들 수소문했지만 못 찾아

2021년 경찰 신고 후 아동권리보장원서 채취한 DNA 대조로 발견

가족 "돌아가신 모친 춤추고 기뻐했을 것"…동생들 "찾아줘서 감사"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언니 장희재(오른쪽) 씨와 실종 여동생인 장희란 씨를 58년만에 만나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3.01.31.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언니 장희재(오른쪽) 씨와 실종 여동생인 장희란 씨를 58년만에 만나 눈물을 훔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뒷짱구 맞다니까."

큰 언니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잃어버렸던 여동생의 머리를 더듬으며 반가운 탄성을 질렀다. 여동생은 "살아있으니 만났죠"라며 연신 끌어안은 언니의 등을 쓸어내렸다.

58년 전 헤어진 뒤 방송에서도 서로 찾지 못하던 '장씨 4남매'가 경찰과 아동권리보장원(보장원)의 유전자(DNA) 대조를 통해 마침내 상봉했다.

31일 오후 2시께 동작구 노량진동 서울 동작경찰서 회의실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상봉식에서 장희재(68)씨와 장택훈(66)씨는 잃어버렸던 여동생 장희란(64), 장경인(62)씨를 58년 만에 만나 해후를 나눴다.

큰 언니 희재씨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셋째 여동생 희란씨를 끌어안은 채 연신 "내가 기다렸잖아", "얼마나 고생했어"라며 오열했다.

오빠인 택훈씨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는 듯 막냇동생 경인씨에게 "우리 집이 한옥집이었지. 아버지가 ○○공고 1회 졸업생이셨어"라고 두런두런 말을 건넸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오빠 장택훈(왼쪽부터), 실종 여동생인 장경인, 장희란 씨, 언니 장희재씨가 헤어진지 58년만에 만나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3.01.31.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오빠 장택훈(왼쪽부터),  실종 여동생인 장경인, 장희란 씨, 언니 장희재씨가 헤어진지 58년만에 만나 눈물을 훔치고 있다. [email protected]



경찰과 가족 등에 따르면, 지난 1965년 3월 당시 각각 12살, 10살이던 희재씨와 택훈씨는 2살 터울로 8살, 6살이던 여동생들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지금은 사망한 막내 남동생까지 5남매를 서울 동작구에서 홀로 키웠다고 한다. 언니·오빠가 학교에 간 사이 희란씨와 경인씨를 데리고 외출했던 어머니는 한 전차 안에서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를 기억하던 경인씨는 "언니하고 둘이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전차에 탔는데 (잠에서) 깨고 보니까 엄마가 없었던 거 같다. 전차에서 내리면서 손을 놓친 거 같다"고 술회했다.

이후 자매는 노량진역 대합실에서 발견된 뒤 함께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졌고, 이름도 바뀌었다. 희란씨와 경인씨의 생일도 원래 태어난 날짜가 아닌 어머니와 헤어진 날짜로 등록됐다.

자매는 독학으로 학교를 나왔고 가정도 꾸렸다. 그나마 함께 보호시설에 맡겨진 덕에 서로 교류하며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희란씨는 "너무 힘들게 살았다.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엄마' 소리를 한번 해 보는게 소원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58년 헤어진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언니 장희재(오른쪽) 씨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빠 장택훈 씨, 실종 여동생인 장경인, 장희란 씨.언니 장희재씨. 2023.01.31.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58년 헤어진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언니 장희재(오른쪽) 씨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빠 장택훈 씨, 실종 여동생인 장경인, 장희란 씨.언니 장희재씨.  [email protected]


한편 큰 언니인 희재씨는 잃어버린 여동생들을 줄곧 수소문해왔다고 한다. 지난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2005년 '아침마당' 등 방송에 출연했지만 자매를 찾지 못했고, 지난 2021년 11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건을 맡은 동작경찰서는 태릉보육원을 비롯한 서울시내 보육원과 노숙인 쉼터 등에 자료 협조를 요청하고 주민조회자료, 법무부자료, 건강보험자료까지 조회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 했다.

1년여간 지지부진하던 가족 찾기가 급진전 된 건 'DNA' 덕분이었다.

 벽에 부딪힌 경찰은 희재씨의 DNA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보장원)에 보냈다. 보장원은 2004년부터 실종아동 등에 대한 유전자 검사 사업을 시작해 실종아동과 실종자를 찾는 보호자의 유전정보를 '실종아동업무시스템'에 등록해오고 있다.

마침 막내 경인씨도 우연히 가족을 찾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지난해 12월 초 인천 연수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DNA를 채취했다고 한다.

이어 같은 달 중순 DNA가 유사한 사람 한 명을 발견한 보장원이 경찰에 통지했고, 추가로 DNA를 채취해 대조한 끝에 지난 26일 경인씨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인씨와 연락이 닿던 희란씨도 다음 날인 27일 곧바로 찾았다고 한다.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서 언니 장희재씨가 동작경찰서에 실종신고를 접수할 때 쓴 장희란씨의 5세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2023.01.31 *재판매 및 DB 금지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서 언니 장희재씨가 동작경찰서에 실종신고를 접수할 때 쓴 장희란씨의 5세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2023.01.31 *재판매 및 DB 금지



희재씨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더 늦기 전에 만나서 반갑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는데 살아계셨다면 춤추고 기뻐하셨을 거다. 동생을 만나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옆에 앉은 희란씨는 감정이 북받친 듯 "엄마"를 되뇌며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통곡했다.

부친이 군인인 줄 알았던 경인씨는 국방부에 여러번 민원을 넣으며 가족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고아가 아닌데 고아인 인생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DNA를 등록했다"며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좀더 짧지만 잘 살아보겠다. 언니 오빠를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택훈씨는 "가족간에 많은 대화를 나눠서 살아온 얘기도 하고 계속 해서 좀 즐거운, 앞으로 남지 않은 인생을 살도록 하겠다"며 감사를 표했다. 헤어지기 전 함께 찍은 사진이 없던 4남매는 조만간 다같이 사진도 찍겠다는 말을 남겼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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