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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진전·동맹 경시 미 대통령 당선, 낙타 등 부러트릴 것"

등록 2023.02.02 10:56:31수정 2023.02.02 14: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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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뉴스 한국의 핵 개발 역사 소개하며

핵무장 가능성 어느 때보다 커졌다 분석

[워싱턴=AP/뉴시스]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에 복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용헬기에서 내린 후 사우스 론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공동 핵 훈련을 논의하고 있느냐'는 기자단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답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했다. 2023.01.03.

[워싱턴=AP/뉴시스]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에 복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용헬기에서 내린 후 사우스 론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공동 핵 훈련을 논의하고 있느냐'는 기자단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답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했다. 2023.01.0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핵무기를 가질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한국의 핵무장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과 관련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NKNEWS)가 1일(현지시간) 한국의 핵무장과 관련한 역대 정부의 움직임을 상세히 소개했다.

NK 뉴스는 또 현재 상황이 낙타의 등을 부러트릴 지푸라기 하나만 있으면 한국이 핵개발에 나설 수 있는 상태라고 비유했다. 

역대 정부의 핵개발 움직임

1970년대 한국은 미국의 동맹 준수 의지를 믿지 못해 핵개발을 시도했다.

당시 북한이 여러 차례 도발하는 와중에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7사단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플루토늄 제조를 위해 프랑스와 비밀 계약을 추진했다. 

1974년 양국은 매년 히로시마 원폭 규모의 핵폭탄 2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설계도를 완성했다.

그해 인도가 첫 핵실험을 하면서 미 정보 당국자들이 핵개발 움직임을 감시하던 와중에 한국의 핵개발 계획이 노출됐다.

박대통령은 미국이 동맹 해제를 위협하자 공장 설립 계약을 취소했다.

그러나 미국이 1978년 한국이 프랑스와 핵개발 논의를 다시 시도한다며 개입했다. 그해 한국 안기부장이 박대통령을 암살했다.

한국 내 미 핵무기

한국의 핵개발 움직임은 북한보다 앞선 것이며 한국에는 주한미군의 핵무기도 배치돼 있었다.

미국은 1958년 재래식 무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처음 150개의 핵탄두를 배치했다. 1967년 950개로 늘었다가 태평양 지역 핵무기 저장고의 보안이 취약하다는 평가와 함께 1970년대 중반 새로운 재래식 전술을 도입하면서 점차 줄었다.

1991년 냉전이 끝나면서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이 “해외 배치 단거리 전역 핵무기를 전면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해 한국 정부는 당초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몇 주 뒤 부시 행정부는 한국에서 공중 투하 핵무기도 제거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핵무기 철수 결정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서 핵무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 당국자들은 한국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수함으로써 북한이 호응하도록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설명했다. 또 미국이 장거리 핵미사일과 괌 주둔 전략폭격기로 한국을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해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이 한국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992년 1월20일 남북한이 “핵무기의 실험, 제조, 생산, 이전, 소유, 보관, 배치,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우라늄 농축

2004년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한국 핵과학자들이 2000년에 소량의 우라늄을 농축했다고 시인했다. 햇볕정책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처음 개최한 김대중 정부 때 있었던 일이었다.

대전 원자력연구소장이 “호기심에서, 깨알보다 더 작은 양의”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축에 비용이 많이 드는 레이저를 사용했다고 밝히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고 의심했다.

한국은 또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 우라늄 및 플루토늄 관련 활동도 시인했다.

그러나 핵과학자협회는 비밀 핵개발 활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정하고 한국 정부나 군이 실험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4년 말 IAEA 사무총장도 “한국이 제공한 정보와 IAEA의 검증활동을 토대로 비공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북한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과 미국의 핵우산을 지목하면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시애틀 대신 서울 지킬까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포함해 모두 6차례 핵실험을 했다. 현재 북한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국 도시에 보복공격을 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구할 것인가를 두고 한국에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됐다. 

윤대통령이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으나 미국의 반응은 미온적이거나 정면 거부였다.

윤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21년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제안했으나 미국이 즉각 거부했다.

한국은 또 핵우산으로 제공하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 확대를 밀어 부쳤으나 이 역시 미국과 갈등만 촉발했다.

지난 11일 윤대통령이 54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성명서를 근거로 한미 양국이 미 핵자산의 “합동 계획 및 합동 실행”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논의 대상으로 “도상훈련, 컴퓨터 시뮬레이션, 핵무기 전달 수단 기동 훈련”을 꼽았다.

윤대통령의 발언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미 정부가 동맹국들과 “핵능력 합동 계획 및 합동 훈련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밝힌 윤대통령의 국내 언론 인터뷰 내용을 부인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일부 매체에서 윤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을 2021년 후보 시절 주장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공동보유 방안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했다.

핵공동보유가 성사되지 않자 한국은 지난해 11월 SCM에서 미국의 전략 자산 배치를 “상시 배치 수준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핵자산이 “평시대로 배치될 것”이라면서 한반도 배치 자산 입장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핵보유국 가입

윤대통령의 마지막 방안은 핵금지선을 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1,2년, 빠르면 수개월 안에 독자 핵개발을 할 기술을 가진 것으로 말한다.

한국에서 핵보유지지 여론이 최근 10년 새 크게 증가했다. 지난 30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지를 밝힌 응답자가 76.6%에 달한 반면 미국이 확장억제로 한국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는 답변은 51.3%에 그쳤다.

윤대통령의 발언은 최후의 수단으로 핵보유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970년대처럼 한국은 많은 제재를 받게 되고 미국과 동맹관계가 훼손될 것이다.

그러나 동맹에 대한 믿음이 분명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진전이나 한미 동맹에 회의적인 미 대통령 당선이 낙타 등을 부러트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핵보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며 이로 인해 한반도 안보 역학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영원히 달라질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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