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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거장' 송영수·최의순·최만린·최종태 공통점

등록 2023.02.08 11: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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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김종영 제자...김종영미술관 '분화'전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조각계 거장' 송영수·최의순·최만린·최종태 공통점이 있다. 4명 모두 우성 김종영(1915~1982)에 조각을 배운 제자들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김종영의 지도로 조소를 전공했고, 졸업 후 김종영과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인체에서 출발한 4명 모두 ‘추상 조각’이라는 공통 분모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가 화두였다. 결국 동아시아 사상의 핵심인 ‘생성론’에서 비롯된 '자연관'으로 귀결됐다.
 
한국 조각사 100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송영수, 최의순, 최만린, 최종태의 작품을 '분화(分化)'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송영수 조각 5점, 드로잉 10점, 최의순 조각 4점, 드로잉 10점, 최만린 조각 5점, 드로잉 8점, 최종태 조각 5점, 드로잉 10점을 전시한다.

1950년 6.25직전에 입학한 송영수는 1970년 4월 1일 김종영보다 먼저 떠났지만, 나머지 3명은 김종영과 30년을 함께 했다. 송영수는 철조 조각의 선구자로 일찍부터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수용하며 조각의 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던 중 불혹에 생을 마감했다. 최의순은 다양한 조형 실험을 거쳐 지금과 같은 석고 직조 작업에 이르렀다. 최만린은 동양의 모필과 서양의 연필 사이의 차이점을 자각한대서 비롯된 추상 작업을 전개했다. 최종태는 평생을 혼돈 속에서도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통해 인간 존재를 성찰하며 오로지 사람을 조각했다.

이들 4명을 묶은 박춘호 학예실장은 "같은 스승에게 지도받았다고 하기에는 각자 간 길은 달랐다"며 "한국에 처음 생긴 조소과에서 서양 조각을 어떤 양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이번 전시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26일까지.

송영수(1930~1970)

1930년 서울 출생으로 1944년 충남 천안중학교에 입학했다. 교내 농구대회와 미전에 참여하여 수상하는 등 미술과 운동을 즐겼다. 1947년 천안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50년 6월 서울대학교 조각과에 입학했으나 6·25동란이 발발하여 부산 송도 임시교사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1953년 제2회 국전부터 1956년 제5회 국전까지 연속 4회 특선으로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57년 제6회 국전에 추천작가로 최초의 철조작품 '효'를 출품했다. 1958년 모교 시간강사를 시작으로 1963년 전임강사가 되어, 1970년 4월 1일 별세할 때까지 후학을 지도했다. 1971년 9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주최로 유작전이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렸다.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최의순(89)

193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양정중학교에 입학해서 손병돈 선생님을 만나 미술반에서 활동했다. 양정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빙상반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53년 봄에 부산 송도 임시교사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했다. 1955년 제4회 국전에 입선을 시작으로, 1961년 제10회 국전에서 내각수반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여, 1963년부터 추천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부터 모교에 출강해서 1999년 정년 퇴임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고 예술원 회원이다.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최만린(1935~2020)

1935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중학교 조각반에서 박승구(1919~1995)에게 사사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49년 제1회 국전 조각부에 '얼굴'을 출품해서 입선했다. 1954년 대학에 입학해서 4학년이던 1957년 국전에 '어머니와 아들'을 출품해서 특선했고, 이듬해인 1958년 '이브'를 출품해서 연거푸 특선했다. 1959년에는 「서 있는 여인」으로 무감사 입선했고, 1960년에는 '이름 없는 수인(囚人)'으로 입선했다. 그리고 1961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64년부터 모교에 출강해서 2000년 정년 퇴임했다.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김종영미술관 특별기획전 '분화(分化)'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최종태(91 )

1932년 충남 회덕에서 태어났다. 대전사범에 입학해서 시동인을 결성할 만큼 문학도의 꿈이 있었다. 대전사범 졸업 후 잠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문화 세계'에 게재된 김종영의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를 보고 조각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1954년 대학에 입학했고, 1959년 국전에 처음 출품했고, 1962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과 연거푸 특선을 2회 하여 1963년 국전 추천작가 되었다. 1970년부터 모교에 후학을 지도하고 1998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김종영미술관 명예관장, 이동훈 기념사업회 회장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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