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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력시설 집중 타격 러시아 공격 실패

등록 2023.03.21 11:48:24수정 2023.03.21 15: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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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 의지 깨트리려는 '얼려 죽이기 작전'

우크라의 기민한 대응·서방 지원으로 무산

러시아의 전력시설 집중공격으로 겨우내 고통을 겪은 우크라이나가 봄이 되면서 러시아의 '얼려 죽이기 작전'을 이겨냈다. 사진은 11월 말 정전된 수도 키이우.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의 전력시설 집중공격으로 겨우내 고통을 겪은 우크라이나가 봄이 되면서 러시아의 '얼려 죽이기 작전'을 이겨냈다. 사진은 11월 말 정전된 수도 키이우.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의 전력 설비를 집중 공격해 겨울 동안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킴으로써 저항의지가 약해질 것을 기대했던 러시아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전력 시설 집중 공격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강인한 복구 노력, 서방의 지원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얼려 죽이기 작전’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다음은 요약.

지난 9일 새벽 러시아군이 값비싼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발전소를 타격했다. 이날 밤새 진행된 러시아의 미사일 집중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전력, 난방, 통신 및 수도 시설을 노린 것이었다. 키이우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항복을 유도한다는 전술이다.

그러나 미사일 공격이 멈춘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전 8시30분쯤 키이우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공방어시스템이 대부분의 미사일을 요격했기 때문이다. 커피상점에서는 크로아상과 카푸치노를 팔았다. 전기가 끊어진 곳은 거의 없었고 일부 파괴된 현장은 즉시 치워졌다.

기온이 오르고 낮시간이 길어지면서 난방과 전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순환 정전도 멈췄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우크라이나의 방공시스템이 크게 강화됐다. 지원을 거부하던 미국과 유럽국들이 패트리어트와 SAMP-T 대공미사일을 지원했고 파괴된 전력 시설 복구 부품과 발전기를 지원했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대통령 안보보좌관은 “러시아군이 고통을 안겨 난민을 유발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우호국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어려운 때도 많았다. 지난해 11월23일 우크라이나의 모든 핵발전소 멈췄을 때 며칠씩 정전이 지속됐고 무선전화망이 끊겼다. 지난 겨울은 몹시 어둡고 추웠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지금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미사일과 드론을 다시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전력망을 복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전력망이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안다. 또 상수도 공급, 하수도 처리, 난방, 통신이 모두 전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우크라이나의 도시인구 비율은 약 7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침공하기 몇 시간 전 러시아와 연결된 전력망을 차단하고 유럽국가들과 연결했다. 충분하진 않지만 필수적인 전력 수요는 충족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전국이 단일 전력망으로 연결돼 있으며 4개의 원자력 발전소와 일부 석탄 및 수력 발전소가 필요한 전력을 생산한다.

소련 시절 주요 산업지대였던 우크라이나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넉넉하게 전력망이 설치됐었고 도시들에 공급되는 전력원도 수시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러시아군은 처음엔 전력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 곧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공 뒤 9일 만에 6개의 원자로가 설치된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다.

미사일 공격은 처음 군사 기지에 이어 철도 시설, 정유 시설을 차례로 공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을 대거 탈환한 뒤 수도 우크라이나는 거의 일상을 회복했고 경제가 반등하는 조짐까지도 있었다. 그러자 러시아군이 지난해 9월11일 처음으로 전력시설을 공격했다. 하루키우 지역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하면서다. 수력발전소를 파괴해 크리비리시가 수몰하기도 했다.

그러자 극우 러시아 블로거들이 ‘러시아군이 드디어 장갑을 벗었다’면서 환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고통스러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동족이라면서 “(우크라이나인이 겪는) 추위와 허기, 암흑과 갈증은 (우리가 겪는) ‘우정과 형제애 상실’ 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10월10일 미사일 70발과 드론 수십대로 대규모 공격을 가해왔다.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를 폭파한 것에 대한 보복 공격이었다. 우크라이나 전력 시설의 30%가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에 따르면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축출돼 러시아로 망명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어느 곳을 공격해야 하는 지를 지정한 때문이었다. 미사일 공격을 주도한 신임 러시아군 사령관 세르게이 수로비킨이 영웅이 됐다.

러시아가 공격 성공에 환호하는 사이 우크라이나는 재빨리 복구에 나섰다. 우선은 파괴된 변전소에 비축된 부품으로 전력망을 복구했다. 복구 뒤 재차 미사일 공격을 당해 파괴됐다.

우크라이나가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러시아 규격으로 만들어진 변전소 및 송전소 설비를 구하기가 어려운 점이었다. 동유럽 국가들과 아제르바이잔 등 구 소련 공화국들에 요청해 부품을 받았다. 11월 중순 3차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복구 작업자들은 헤드램프를 켠 채로 눈과 비가 내리는 속에서 파괴된 시설을 복구해야 했다.

우크라이나가 차츰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에 적응해나갔다. 1880년대 개발된 맥심 기관총으로 이란제 드론 공격을 막았다. 키이우 외곽에 배치된 파트타임 대공부대가 기관총으로 하늘에 총알방어막을 형성해 드론을 요격했다. 보이기 전에 소리부터 들리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미사일 요격은 훨씬 힘들었지만 독일과 미국이 Iris-T 및 NASAMS  대공 미사일을 지원하면서 미사일 요격 성공률도 훨씬 높아졌다. 첨단 패트리어트 대공미사일도 곧 지원된다. 지난 9일 우크라이나는 속도가 느린 러시아군의 Kh-101, Kh-505, 칼리브르 순항미사일 48기 가운데 34기를 요격했다. 그러나 6기의 Kh-47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과 6기의 초음속 Kh-22 미사일은 모두 요격에 실패했다.

어려움은 또 있었다. 전력망은 전압과 주파수를 잘 유지하지 않으면 쉽게 고장이 난다. 유럽 표준 50 헤르츠를 조금만 벗어나도 장비가 파괴되기 때문에 변전소와 송전소 등은 전류가 불안정해지면 자동적으로 가동을 멈추도록 돼 있다.

지난해 11월23일 미사일 대규모 공격으로 송전소와 변전소 여러 곳이 파괴됐을 때 전류가 크게 불안정해져 모든 원자력 발전소들이 가동을 멈춘 일도 있다. 수력 발전소들과 화력발전소들을 가동해 필요한 전력을 채운 뒤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가동해야 했다. 원전의 경우 50헤르츠의 주파수를 유지하면서 재가동하기까지 곡예를 벌여야 했다.

전력을 보내 조명, 난방, 수도, 통신을 재개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더 걸렸다. 수백 만 명이 3일 동안 정전의 암흑 속에서 견뎌야 했다.

당국자들은 이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에 요청해 필수 통신망을 지원 받았다. 날씨는 영하 0도를 오락가락했다. 수도 키이우가 암흑에 빠졌다.

이후 몇 차례 더 미사일 공격을 당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순환 정전을 실시해야 했다. 키이우에서도 하루 몇 시간만 전기, 수도, 난방을 공급했다. 수도 배관이 동파하는 걸 막는데 급급했다. 가로등과 신호등까지 꺼졌다.

시민들은 자명종을 맞추고 샤워를 하는 등 적응했고 일부는 시골로 나가 장작불에 의존했다. 키이우 시내 카페에 정전 메뉴가 생겨나기도 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축전기와 이동식 발전기를 마련하고 담요와 촛불, 식수통을 준비했다. 캠핑용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지난해 10월 이후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사들인 발전기 용량은 원전 1기에 맞먹는 1 기가와트에 달한다. 촛불로 계란을 굽고 난방을 하는 법, 차안에서 머리 말리는 법이 회자됐고 애견을 산책할 때는 LED 목줄을 사용했다.

지난 1월부터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뜸해지면서 대부분의 전력 시설을 복구한 우크라이나가 지난달부터 순환 정전을 중단했다. 지금 수도 키이우에는 가로등이 다시 켜지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미사일 850기와 드론 수백 대를 동원해 공격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의지는 오히려 강해졌다. 영토를 조금이라도 내주면 안된다는 사람이 전체의 87%에 달한다.

반면 미사일 공격을 주도해 “아마겟돈 장군”으로 블리던 수로비킨 장군은 러아군 총지휘권을 박탈당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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