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우리에겐 더 많은 장애인 교사가 필요하다[인터뷰]

등록 2024.05.15 06:00:00수정 2024.05.15 06:54:1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15년차 시각장애 교사 김헌용씨 인터뷰

장애 교사 노조 만들어 정부와 단체협상

"내 장애가 교육적으로 활용되길 바라"

[서울=뉴시스] 사진은 15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인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사진=본인 제공) 2024.05.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사진은 15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인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사진=본인 제공) 2024.05.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김헌용(38)씨는 15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다. 장애인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2007년 시행된 장애인 교원 구분 모집제를 발판으로 2010년 교편을 잡았다. 서울 강남구의 구룡중학교 등을 거쳐 지금은 강동구 신명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교사 생활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글자를 점자로 변환해 주는 점자 정보단말기는 물론, 점자 교과서도 없어 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에 번역을 요청해야 했다. 행정 업무를 위한 업무포털과 교내 인트라넷 사용도 어려워 다른 교사들은 쉽게 처리하는 교과 외 업무 수행도 쉽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 삼킨 것도 수차례다. 한국적 교육 체계에서 담임 교사는 학생의 보호자로서 돌봄과 생활지도라는 책임을 진다.

그런데 장애 교사가 이 책임을 다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장애인 교사가 담임을 할 여건을 지원해주는 체계가 부족한 실정이다.

김씨는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이 필요하듯이 장애인 교원이 담임 업무를 맡을 때 필요한 편의 지원들이 있다"며 "그런 지원들이 없기에 장애인 교사가 선뜻 담임을 하겠다고 자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족한 지원 탓에 능력 발휘가 어려워 연수·승진 등 교사로서의 성장 기회도 자동으로 줄었다.

그는 "장애인 교사들은 학교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에 수업을 아무리 잘해도 생활지도나 업무 부분에서 감점을 받아 인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며 "교사는 계속 성장하고 배워야 하는 직업이다. 많은 장애인 교사들이 성장의 기회를 일찌감치 박탈당해 자존감과 직무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장애가 있는 교사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이런 불편과 차별들이 교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장애인 교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이 오랜 기간 방치돼 왔고 이로 인해 장애인 교사들의 수업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그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논란이 됐던 건 교사들이 도움을 청할 곳 없이 고립됐다는 것 때문"이라며 "장애인 교사들은 예전부터 느껴오던 것이다. 서이초 교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장애인 교사의 교권을 침해하는 이는 학생이라기보다는 교육 당국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뉴시스] 사진은 15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인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사진=본인 제공) 2024.05.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사진은 15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인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사진=본인 제공) 2024.05.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을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요구하기 위해 김씨와 동료 장애인 교사들이 2019년 만든 게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노조)이다. 설립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김씨는 지난 2021년부터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교육부와 단체협약을 맺으며 정식으로 장애 교사의 권리를 인정받는 데 이르렀다. 장애인 교원이 만든 노조가 정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학교 현장에 장애인 교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 교사가 다른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배워야 하는 인권적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가령 성평등을 강조하는 어떤 집단이 전부 남자들로만 구성돼 있으면 그 집단이 성평등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학교가 학생들에게 공동체적 가치를 가르치려면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학교가 이렇게 열린 공간일 수 있구나'는 교육적 메시지를 백 마디 말보다 장애인 교원 한 명의 존재로 전달할 수 있다"며 "그게 장애인 교사들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7년 구룡중학교 재직 당시에는 학생들이 강남구청에 민원을 넣어 학교 앞 점자 보도블록이 설치됐다고 한다.

그는 "그 민원이 내 삶을 바꿨다. '장애인이 내 옆에 있다'도 좋지만, 장애인 교사가 더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모습을 학생들이 직접 보면서 '세상을 이렇게 바꿔나갈 수 있구나'를 느꼈을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회 참여를 경험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 장애가 교육적으로 활용되길 바란다"며 "장애가 나쁜 게 아니다. 장애에 주변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교사의 장애가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도, 반교육적으로 소모될 수도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