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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경련,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처럼' 발간

등록 2013.08.19 11:00:00수정 2016.12.28 07: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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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우은식 기자 =  “화약인은 정직해야 한다. 또 정확해야 한다. 약속된 시간과 약속된 장소에서 반드시 폭발하는 화약처럼.”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일생은 강렬하게 빛나는 불꽃같은 삶이었다. 그는 51퍼센트의 열정과 49퍼센트의 절제로 움직였다. 그리고 ‘정확’과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김종희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가 남긴 말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말 속에는 화약 산업에 대한 지극한 사랑,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을 향한 신뢰와 격려가 담겨 있다.

 전경련의 출판자회사 FKI미디어가 19일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제7탄 김종희처럼 - 국가 기간산업 개척에 평생을 바친 프런티어를 펴냈다.

 '김종희처럼'은 한화의 창업자 ‘다이너마이트 김’, 김종희 회장의 역동적인 삶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소설 형식을 빌려 재구성했다.

 ◇‘다이너마이트 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경제의 도화선이 되다

 김종희 회장은 1940년대 일제 강점기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약을 공급하던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하며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나라가 해방되었다가 다시 남북으로 갈리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일본인 경영진들이 모두 빠진 회사에 남아 화약을 지켰다. 화약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한국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피난길을 마다하고 국내 화약계를 지키는 등대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전쟁의 난리 속에서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화약을 지켰던 까닭은 자신마저 떠나버리면 한국 화약계의 명맥이 끊어질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아픔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산업을 일으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화약 산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른 분야에 비해 화약 산업이 대단한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김종희 회장은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던 화약 산업을 떠안았다.

 김종희 회장은 사업을 통해 나라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업철학에 따라 폐허가 된 인천 화약 공장을 복구해 ‘한국화약주식회사(현 한화)’를 설립했다.

 이후 한국화약은 순수한 국내 기술로 초안폭약, 젤라틴 다이너마이트 등 산업용 화약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아무런 산업 기반시설이 없던 1950~1960년대에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우리나라가 국토개발계획에 한창이던 때 도로를 놓거나 부두를 만들고 광산을 캐는 등 땅과 하천을 개발하는 각종 공사에서 한국화약은 적재적소에 화약을 공급했다.

 특히 국토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화약을 전부 공급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국내 산업 부흥기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한국화약은 화약 사업뿐만 아니라, 기계공업, 석유화학, 에너지 사업 등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의 영역을 넓히며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따뜻한 리더십으로 희망의 본보기가 되다

 김종희 회장은 주위의 본보기가 되었던 깨끗한 기업인이었다.

 “화약인들은 100퍼센트의 정확해야 한다. 또한 진실해야 한다.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생기면 그것이 곧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약인에게 ‘정확’은 곧 ‘생명’이다”

 김종희 회장은 직원들에게 항상 ‘정직’과 ‘정확’을 강조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편법을 싫어했던 그는 기업을 이끄는 동안 한 치의 티끌 없는 합리적이며 투명한 경영을 했다. 특히 직원을 뽑을 때는 혈연·지연·학연은 철저히 배제했다.

 한국화약의 최대 위기였던 1977년의 이리역 폭발 사고에서 김종희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전 재산인 90억 원을 피해 보상금으로 내놓는 과감한 결단을 보여줬다.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떳떳이 지고 부끄럽지 않은 기업인이 되겠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또한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중요하게 여겼던 김종희 회장은 한평생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돈은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때 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했기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꾸준히 이웃과 결실을 나누며 세상에 온기를 보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나눔이라고 생각했던 김종희 회장은 천안북일고를 설립하며 인재 양성에도 뜻을 펼쳤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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