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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립 잡기노트]노래반주기, 무기는 아니지만…‘국방부 아리랑’

등록 2013.12.19 08:03:00수정 2016.12.28 08: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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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뉴시스】문화융성위원회가 10월27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주최한 ‘아리랑,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 대통령도 아리랑을 불렀다.

【청와대=뉴시스】문화융성위원회가 10월27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주최한 ‘아리랑,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  대통령도 아리랑을 불렀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97>

 국방부는 침 먹은 지네다. 보다 못했는지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가 나섰다. ‘시중에 유통되는 노래연습장 반주기 삭제 곡목에 아리랑이 포함돼 있다’는 문제 제기에 “2007년 국방부 지침에 따라 북한가수가 부른 아리랑이 일부 병영에 납품되는 기기에서 삭제된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6년 전 6월 북한가요 음반출시를 계기로 이것들의 무분별한 군내 유입 방지 차원에서 사단별로 금지 대상곡을 자체적으로 정해 노래방기기 사업자가 해당 곡들을 삭제, 임차방식으로 군납토록 해왔다. 군대에서 민간으로 흘러나온 기계가 복원되지 않은 채 재활용되면서 들통난 ‘국방부 아리랑 개그’인 셈이다. 문체부는 “지자체, 노래반주기 제조회사 등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노래반주기 중 삭제곡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확인될 경우 복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어쩌자고 국방부는 금지곡 리스트에 아리랑을 넣었는가. 세 가지 정도로 짐작할 수 있겠다.

 우선, 관행이다.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명시한 최후의 기록은 1979년 1월15일 발간된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금지곡 목록집’이다. 일본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1938년 편곡한 아리랑이 30년이 지나도록 부산 등지의 다방에서 유통되는 것을 규제하고자 ‘왜색’이라고 낙인했다. 일본에서 제작된 음반과 카트리지 테이프의 아리랑을 금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 아리랑은 그렇게 금지곡으로 분류됐다.  

 다음, 19쇄나 찍은 김산과 님 웨일스의 스테디셀러 ‘아리랑’이 금서로 묶인 여파다. 1973년 이영희 교수가 일본어판 ‘아리랑, 한 조선 청년의 불꽃같은 항일의 삶’(이와나미 문고)을 국내로 반입해 1976년 수감 중이던 김지하 시인 등에게 사본으로 전달하면서 파급됐고, 1984년 국역본 ‘아리랑’으로 출판됐다. 그런데 2005년 광복절, 정부는 이 책의 주인공 김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기념사업회도 결성됐다. 결국, 타성적 레드 콤플렉스가 아리랑의 발목마저 도매금으로 잡고 있는 꼴이다.

 이어, 1980~90년대 시위현장에서 불린 아리랑을 일부 우익단체 등이 불온한 노래로 지목한 것의 영향이다.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 노동운동 현장의 근로자들이 노래한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어서 훌쩍 넘세. 이불이 들썩 천장이 들썩 지붕이 들썩. 혼자 자다가 둘이 자니 동네가 들썩. 공장이 들썩 공단이 들썩 인천이 들썩. 우리 노동자 단결하니 전국이 들썩. 과장이 벌렁 상무가 벌렁 사장이 벌렁. 민주노조 결성되니 회장이 벌렁. 학생도 단결 농민도 단결 민주시민도 함께. 우리 노동자 앞장서니 온 나라 불끈.’

 따지고 보면, 아리랑의 특징인 동시대성이 매우 잘 드러난 일면이다. 이토록 역동적인 저항성은 일제강점기 ‘독립군 아리랑’유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수용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러시아 ‘레드 아미 윈드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나탈리아 마누리크가 10월6일 세종문화회관 ‘뉴시스 공감콘서트 가을’ 무대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fufus@newsis.com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러시아 ‘레드 아미 윈드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나탈리아 마누리크가 10월6일 세종문화회관 ‘뉴시스 공감콘서트 가을’ 무대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email protected]

 역사 속의 아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민요·신민요·대중가요·소설·현대시·영화·연극·가극·만담·춤 등 전 장르로 확산했다. 광복 후에는 담배·대중잡지·노래방 등의 상호와 온갖 상품명으로 인기를 누리며 아리랑 ‘문화’로 뿌리내렸다.

 아리랑 권위자 김연갑 상임이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우리에게 아리랑은 이별과 애수로 인한 정서인 한(恨)의 수렴체로, 내외적 모순에 대한 저항의 발현체로, 좌우의 극단에 대한 차단체로, 고난과 역경 극복의지의 추동체(推動體)로 기능하고 있다. 단편적인 해석을 경계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아리랑의 전승과 확산은 곧 이땅의 역사다. 고려 말의 강원·경상 메나리조 아라리, 경복궁 중수기의 아라령(문경아리랑), 일제강점~광복기의 긴아리랑·강원도아리랑·밀양아리랑,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 진도아리랑, 각종 신민요 유행가와 해외동포 아리랑, 6·25동란기의 군가와 심리전가 아리랑, 88서울올림픽의 한국이미지 아리랑, 남북교류기의 단일팀 단가 아리랑, 2002한일월드컵의 세계적 응원가 아리랑, 이후 국가브랜드로서의 아리랑이다.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가 지난 10월27일 저녁 청와대로 국민들을 초청해 ‘아리랑,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을 펼쳤다. 작년 12월5일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고 아리랑을 세계와 더불어 누리자는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리랑 공연을 녹지원에서 하는 것은 청와대부터 문화가 있는 삶에 솔선수범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이런 불씨를 자주 만들어 이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문화융성시대가 열리도록 해야겠다는 뜻입니다. 작은 불씨지만 이번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시작해 보려고 그럽니다”며 아리랑에 힘을 실었다.  

 일본 방위청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방부는 무심코 금지곡으로 방치했을 아리랑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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