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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왕은 내 얘기 듣거라!" 필리핀 위안부피해자의 절규

등록 2016.01.30 12:58:52수정 2016.12.28 16: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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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한일간 위안부합의이후 일본의 위안부역사 날조 공세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최근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이 공개적으로 재미한인시민단체의 위안부이슈 캠페인 활동을 자제를 을 요구한 이후 자신감을 얻은 일본 우파의 뻔뻔함이 도를 넘고 있다. 일본 극우단체로 보이는 이들이 청원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에서 "위안부는 급여를 잘 받은 매춘부였고 미군에도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내용을 기술하라(Write “Comfort Women were well paid prostitutes, sold their service to US Army as well)"는 내용의 캠페인이다. 서명 운동은 총 5천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5일 현재 3644명이 참여한 상태이다. 한편 '위안부 역사교육 가주연대' 등 한인단체들도 캘리포니아 개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온라인 청원운동(www.comfortwomenpetition.org)을 전개하고 있으나 이날 현재 2793명으로 저조한 편이다. 사진은 지난해 캘리포니아 위안부소녀상을 찾은 이용수할머니. 2016.01.25. <사진=가주한미포럼 제공>  robin@newsis.com

필리핀 피해할머니들 아키히토 일왕 방문 시위벌여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낮에는 식모살이 밤에는 성노예로 매일 살아야 했다!"

 일본군인들에게 납치돼 15개월간 성노예 생활을 했던 필리핀의 할머니들이 참혹했던 과거를 공개하며 일본정부의 책임을 요구했다.

 뉴욕타임스가 일본 군인에게 납치돼 위안부 성노예 생활을 한 필리핀 할머니를 조명해 비상한 관심이 일고 있다. 타임스는 30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방문한 필리핀 대통령궁 앞에서 뜨거운 햇볕속에서 기다리는 힐라이아 부스타만테(89)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다.

 힐라이아 할머니가 일본군대의 성노예로 끌려간 것은 필리핀이 일본에 점령된 1943년이다. 어느날 세명의 군인들이 그녀를 강제로 트럭에 태운채 마구 폭행했다. 그녀의 나이 불과 열여섯살이었다.

 힐라이아가 끌려간 것은 일본군 주둔지로 다른 3명의 소녀들과 함께 판잣집같은 곳에 수용됐다. 그곳에서 낮에는 군인들의 옷을 빨고 밥을 지었고, 밤에는 최소 6명 이상의 군인들에게 강간당하는 일이 매일 되풀이됐다.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15개월간 지옥같은 나날이 계속됐다.

 힐라이아 할머니는 "일본정부는 나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어머니외엔 나의 과거를 말할 수 없었다. 너무나 치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기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2차대전 일본군대에 성노예를 끌려간 한국의 여성들의 이야기는 세계가 아는 악명높은 사례"라면서 "대략 8만에서 20만명 혹은 그 이상으로 추산되는 한국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간 것은 한국에겐 곪아터진 트라우마였고 한일관계를 방해하는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2차대전 성노예피해자들을 돕는 필리핀여성연맹(LFW) 레칠다 엑스트레마두라 상임이사는 "일본정부가 한국의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를 하면서 왜 필리핀의 피해자들은 외면하는가.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일본에 굽실대면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레칠다 상임이사는 "일본군대는 주둔지에 위안소를 만들어 필리핀의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지만 필리핀 정부의 한심한 태도로 다른 나라 피해자들과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피해 여성들은 아키히토 일왕이 필리핀을 방문한 닷새동안 시위를 벌였다. 82세의 아키히토왕은 필리핀을 53년만에 방문했다. 2차대전에서 숨진 일본과 필리핀 전몰자 추모비를 찾아 참배한 그는 아키노 대통령을 만나 2차대전 일본군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토로했지만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93년 일본정부는 '고노담화(河野談話)'를 통해 일본군대가 위안부피해여성들을 동원하는데 관여한 것을 처음 인정하며 사과를 표명한 후 민간기금을 통해 아시아의 일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은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일제 만행 언급이 불충분하고 일본정부가 직접 배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상 제안을 거부했다.

 필리핀 대통령실 대변인은 "위안부 이슈는 명목상의 직위만 갖고 있는 일본의 황제가 아니라 정부 수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에게 해당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필리핀대학의 리카르도 호세 역사학 교수는 "2차대전 일본군이 저지른 성노예 만행 문제는 양국간의 광범위한 현안들에 묻히곤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필리핀 최대의 무역파트너이자 1960년대 이후 200억 달러 이상의 개발지원금을 제공한 최대 공여국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에 대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비슷한 처지이기도 하다.

 호세 교수는 "아키히토 왕은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비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도덕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서 "일본국민들의 많은 존경을 받는 그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심각한 회한을 표명한다면 중대한 진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칠다 상임이사는 "아키히토 왕이 아키노 대통령에게 필리핀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은 일본이 너무 자동차를 많이 팔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에 화가 났다. 두사람은 교통체증으로 농담 할 시간에 성노예피해자에 대한 얘기를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아키히토 왕이 필리핀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성노예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세워지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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