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 보물' 오세영 화백 별세…백정숙·박재동· 윤태호등 애도 잇따라
백 평론가는 6일 뉴시스에 “편찮으셨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형형한 눈으로 웃으면서도 만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던 평소 모습이 떠올랐다”고 슬퍼했다.
“1950-60년대 앵두나무 우물가의 울렁울렁 사랑이야기와 그 마을의 대소사를 오 화백만큼 진지하게 잘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우리시대를 그리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분이 가셨다. 필력은 또 어떤가. 화가들도 부러워했다. 외국에 내놓은 대표적인 한국작가셨다. 비통하다.”
후배들에게는 늘 자신을 정진하는 모범적 선배였고, 만화계 구조를 개선하는데 열정적이었다. 바른만화연구회를 시작으로 우리만화협의회를 거쳐 우리만화연대를 창립한 1인이었고 이사로 활동했다.
“이두호 김형배 백성민 이희재 등 윗세대 작가들 가운데 막내셨다. 덕분에 만화계 후배들이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갔다.”
특히 후학양성에 공들였다. “후배들에게, 만화라고 그림을 허투루 그리는 게 아니며 그림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해야하는지 늘 강조하셨다. 다른 작가에 비해 작품수가 많지 않은데 옆에서 보기에 (시간이 너무 걸려) 안타까울 정도로 한 장 한 장 공들여 그렸다.”
백 평론가는 “늘 손에서 붓을 놓지 말 것을 당부했다”며 “데생연습을 시켰다. 종이도 연구했다. 어떤 펜과 붓을 써야 그 종이와 조화가 잘되는지 연구하고 자신이 체득한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셨다. 최호철 등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분”이라고 평했다.
1980년대 후반 오세영의 등장은 예술로 만화를 보는데 일조했다. 그는 ‘부자의 그림일기’ ‘고샅을 지키는 아이’등에서 뛰어난 묘사와 연출기법으로 만화의 격을 높였다.
박재동 화백은 이러한 오 화백을 “소똥을 그릴 줄 아는 만화가”라고 평가했다. “오세영의 작품은 내용을 읽어나가지 않고 그림 한 장면만 따로 보더라도 진득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한다. 장면 장면이 오래오래 볼 가치가 있는 그림, 만화가라면 누구라도 꿈꾸고 있는 화면일 것”이라고 칭송했다.
김형배 작가 등 만화계 선후배 작가들이 어젯밤부터 빈소를 찾고 있다. ‘미생’ 윤태호 작가는 부고 소식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너무 놀랐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된다.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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