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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기자수첩]함께 걷는 2인3각의 세상

등록 2016.06.12 11:04:44수정 2016.12.28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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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남자는 씨름꾼이었고, 여자는 김영감 댁 셋째 딸이었다.

 두 사람의 연애는 4H구락부 운동회에서 시작됐다. 2인3각 경기가 하면서 처음 만나 눈빛을 주고받았다. 씨름꾼은 다음날 김영감 댁을 찾아 첫눈에 반했다며 따님을 달라고 졸랐다. 마을유지 김영감은 애지중지하던 딸이 외간 남자와 정분이 났다며 다리몽둥이를 자른다고 마당에 작두를 꺼내놓았다. 열 아홉살, 김영감 댁 셋째 딸은 작두가 무서워 도망가 스무 세살 씨름꾼의 각시가 됐다.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와의 결혼이야기다.  

 칠순의 어머니는 항상 어제 일처럼 아버지와의 2인3각 경기를 떠올린다. 누가 누구를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란 환경이 뚜렷하게 차이 나던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으로 묶여 50여 년 동안 함께 걸어왔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로 숨진 스무살 청년의 월급명세서가 처음 기사화된 날이었다. 후배는 카카오톡으로 10년 전 우리들의 월급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뭉클한 게 있었다.

 청년의 마지막 월급과 서른 중반 무렵 우리들이 받았던 월급의 사이즈를 비교해서가 아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회사에서 후배와 버거운 일을 나눠 하고 모자란 술을 서로 사줬던 게 새삼 떠올라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함께 잘 걸어왔다고 나는 후배에게 말하고 싶었다.

 구의역에서 청년이 죽은 이유는 '2인1조'라는 작업수칙을 지키지 않아서다. 나의 잘못이 짝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2인3각'의 룰을 지키지 않아서다.

 청년의 잘못이 아니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맺었던 계약은 애초부터 두 사람 몫의 일을 한 사람이 해야만하는 구조를 강요하고 있었다.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란 신조어가 생겼다. 서울메트로 출신 은성PSD 정규직 직원들은 약자의 희생 위에서 호의호식한 이들로 비난 받는다.

 회사가 없어지면 서울메트로로 'U턴'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와 만 19세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불평등을 극명히 보여준다. 메피아는 애초부터 비정규직과 함께 걷지 않았다.

 지난 십수년 간 우리사회의 시스템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최적화되어 갔다. 구조조정이란 말에 거부감이 생기니 이젠 고용유연화란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경제사정이 갈수록 안 좋아지니 고용유연화는 아마도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떠돌며 비정규직을 늘려나갈 것이다.

 오늘 오후 서울시청에서 구의역 사고 원인규명과 대책을 논의하는 시민대토론회가 열린다. 학계, 노동계, 언론, 시민단체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 패널 10명과 시민패널 100명이 참석한다.  

 사고수습의 최종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시장도 참석해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뒤늦은 대책 같지만 이 토론회에 거는 기대가 각별하다. 비정규직이 차별 받지않는, 따로 걷지 않는, 함께 걷는 '2인3각'의 세상을 위한 혜안(慧眼)을 고대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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