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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법조인의 권력화

등록 2016.07.27 13:08:17수정 2016.12.28 17: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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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법은 있어도 법치주의는 없어 보통 사람들에게는 추상같아도 스스로의 비리에 눈을 감으면 사회 균열을 협곡으로 만들어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법치주의의 부재는 지뢰나 다름없다. 순식간에 공동체를 초토화한다. 언제라도 메가톤급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후폭풍도 엄청나다. 불신과 불만이 사회 곳곳에 균열을 일으킨다. 섣부른 대응은 균열을 깊은 협곡으로 만든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을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풍자했다. 겉만 번지르르했을 뿐 불의와 부정이 횡행했다.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시기였다. 투기꾼들이 권력과 손잡고 대형 스캔들을 양산했다.

 대통령부터 함량 미달이었다. 남북전쟁의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는 1868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권자는 그랜트의 공약보다는 신화에 매료됐다.

 그랜트의 인생 역정은 신화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술주정뱅이가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못지않은 장군으로 올라섰다. 그는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부터 술 때문에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장군의 꿈을 접고 전역했다. 농사도 지어보고, 가죽 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다. 손대는 일마다 꼬였다. 술로 쓰린 마음을 달랬다.

 마침내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왔다.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북부 연방군은 민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많은 장교가 필요했다. 그랜트는 자원 입대했다. 일리노이 연대장으로 연전연승을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으로 진급했다.

 술 탓인지 그랜트는 멍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정신이 돌아오면 180도 달라졌다. 신속한 결단을 내린 후 과감하게 공격에 나섰다. 적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남군 지휘관이 항복 조건을 물으면 그랜트는 "무조건 항복"을 외쳤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무조건 항복, 그랜트'였다.

 그랜트는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링컨 대통령이 "그랜트 장군이 즐겨 마시는 술 이름을 알고 싶군. 다른 장군들에게도 그 술을 마시게 해야겠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링컨만이 아니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랜트를 칭송했다. 그는 쏟아지는 찬사에 취해 버렸다.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했다. 값비싼 선물을 태연히 받아 챙겼다. 그저 존경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군인은 최악의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마저 전공(戰功)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다. 국가와 정부가 자신으로부터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 취임 후에도 버젓이 뇌물을 챙겼다.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자 뇌물 단위도 눈에 띄게 커졌다. 암수 한 쌍의 경주마, 6만5000달러 상당의 서가(書架)에서 마침내 저택으로까지 확대됐다. 영부인도 대통령과 팀 플레이를 펼쳤다.

 대통령 부부가 이러니 친인척이나 측근들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랜트의 비서 뱁콕은 정치인, 공무원, 위스키업자들과 공모해 수백만달러의 주세(酒稅)를 착복했다. 국방장관 벨크냅은 군수품 부정 스캔들로 물의를 빚었다.

 그랜트의 처남 아벨 코빈도 강도귀족들과 함께 대형 스캔들을 터뜨렸다. 철도사업자이자 투기꾼인 제이 굴드는 코빈을 끌어들인 후 금 사재기를 통해 시세를 조정하려다가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일으켰다.

 미국 의회는 그랜트 임기 내내 청문회를 열었다. 대형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랜트는 공직자의 윤리는 물론 개념조차 희박했다. 공직 윤리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어쩌면 윤리는 배움과는 무관할지도 모른다. 진경준 검사장은 부정축재를 통해 그것을 입증했다. 그는 20년 전 4000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암표상을 구속 기소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암표를 팔다가 적발됐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엄정한 법 적용 대상은 일반 국민으로 제한됐다. 자신은 거리낌없이 100억원대의 주식 뇌물을 받아 챙겼다. 진 검사장의 행태는 왜곡된 법 의식을 방증한다. 그에게 법은 그저 국민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법은 그저 권력일 뿐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법을 적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는 법은 있지만 법치주의는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평범한 국민은 물론 정치 또는 경제 권력 스스로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때 법치주의도 정착될 수 있다. 법치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면 법은 언제나 권력자의 사유물일 뿐이다.

참고문헌 앙드레 모로아 지음. 신용석 옮김. 1983. 미국사.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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