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낙태 허용 논란…政 '낙태허용범위' 빠진 채 논의 재개
복지부, 실태조사 토대 자문 착수
靑 국민청원 답변 이후 1년3개월만
"허용범위 등은 헌재 판단이 먼저"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맞이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8.11.28. [email protected]
일단 정부는 현황 파악 부족을 이유로 1년3개월 가까이 미뤄온 낙태 관련 법·제도 개선 논의를 재개키로 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낙태 허용 범위 확대 등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심리가 나오기 전까진 어려울 전망이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이를 토대로 여성계나 학계 등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2011년 15~44세 여성 4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뒤 7년 만인 지난해 9~10월 15~44세 여성 1만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2017년 11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3만5372명이 동의한 '낙태죄 폐지 및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국민청원에 답변하면서 '실태조사 재개 후 논의'를 약속했다.
당시 조 수석은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의를 진전시킬 실태조사 결과는 그로부터 1년3개월이 다 된 시점에서 나왔다.
손문금 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청와대 답변에서 현황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실태를 파악하고 논의자료로 삼기 위해 실태조사를 추진했다"며 "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나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구하는 등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회적 관심이 높은 낙태죄를 둘러싼 정책 검토는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헌재는 낙태를 죄로 규정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심리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인공임신중절을 여성에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형의 죄를 묻고 있으며 제270조 제1항에선 수술한 의료인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012년 한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으나 당시 조대현 재판관 퇴임으로 1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 4로 맞서 위헌 정족수(6명) 미달 상태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이후 2017년 2월 69회에 걸쳐 수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해 5월24일에는 6년 만에 헌재에서 낙태죄 공개변론이 열리기도 했다.
정부는 형법은 물론 허용 범위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도 헌재 심리가 나와야 입법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등은 '낙태=불법'이라는 전제 하에 크게 5가지 경우에 한해 24주 이내 인공임신중절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모자보건법 소관 부서인 복지부는 형법에 대한 판단이 우선해야 낙태 허용 범위를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손 과장은 "낙태 허용 시기나 사유 등은 형법과의 관계 하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허용 범위 논의도 헌재 심리가 나와야 한다"며 "허용 범위 등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사항 이외의 정책적 사안들에 대해 검토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국가의 역할 가운데 형법이나 모자보건법 개정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우선순위 정책으로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공동책임의식 강화'(27.1%)를 꼽았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23.4%), '양육에 대한 남성 책임을 의무화할 수 있는 법·제도 신설'(18.1%), '출산·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13.1%) 등을 꼽았다.
이외에도 '인공임신중절 관련 전문상담서비스 지원'(9.5%), '인공임신중절 관련 의료비 지원'(6.0%),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인식 제거'(2.3%) 등도 정부 역할로 제시됐다.
【서울=뉴시스】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15~44세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약 5만건으로 2005년 조사 이후 감소 추세이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시민사회와 의료계에서도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낙태 허용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22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측은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며 ▲낙태죄 폐지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 ▲성교육 강화 ▲피임기술 및 의료시설 접근권 보장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안 철회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계 등에선 낙태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법이나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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