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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 "이희호 여사 유언 '평화통일' 우리가 실천해야"

등록 2019.06.14 09: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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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고난의 서곡"

"사형선고, 가택연금에도 투쟁하라며 남편 독려"

"최초의 노벨평화상·정권교체, 절반은 여사의 몫"

"여성·약자 위한 업적도…남편 통해 오랜 꿈 구현"

"고문, 납치, 연금 없는 곳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진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2019.06.14.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진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현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이희호 여사님은 유언에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씀했다"며 "이제 남은 우리는 여사님의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사회장으로 엄수된 고(故) 이희호 여사 영결예배 조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그 격랑의 한복판을 가장 강인하게 헤쳐오신 이희호 여사님을 보내드려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리는 조사를 하는 도중 목이 메어 잠시 멈추기도 했다.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여사님은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여성인권에 눈떴고, 유학을 마치자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며 이 여사의 생애를 소개했다.

이어 "여사님은 아이 둘을 가진 홀아버지와 결혼했고,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갔다. 그것은 길고도 참혹한 고난의 서곡이었다"며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선고 등 다섯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었다. 가택연금과 해외 망명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진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2019.06.14.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진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 총리는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감옥에 계시거나 해외 망명 중일 때도, 여사님은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고 독려했다"며 "훗날 김대중 대통령이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여사님이 믿은 하나님은 기나긴 시련을 줬지만 끝내는 찬란한 영광으로 되돌려줬다"며 "남편은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분단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다. 우리 국민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의 절반은 부인 몫'이라고 논평했다"며 "정권교체의 절반도 여사님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인 업적들을 남겼다. 양성평등기본법 제정과 여성부 신설 등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익이 증진되기 시작됐다. 기초생활보장제 등 복지가 본격화했다"며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발인이 엄수된 14일 오전 장례예배를 마친 동교동 사저(침실)에서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2019.06.1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발인이 엄수된 14일 오전 장례예배를 마친 동교동 사저(침실)에서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2019.06.14. [email protected]

그는 "10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자 여사님은 남편의 유업을 의연하게 수행했다. 북한을 두 차례 더 방문했고 영호남 상생 장학금을 만들었다"며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 총리는 끝으로 "여사님, 그곳에는 고문도 투옥도 없을 것입니다. 납치도 사형선고도 없을 것입니다. 연금도 망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대통령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십시오"라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이어 "여사님, 우리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난과 영광의 한 세기, 여사님이 계셨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며 조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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