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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모방자살 막아라" 언론 자성 목소리

등록 2010.12.14 09:15:56수정 2017.01.11 1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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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명 연예인 자살 이후 2달간 자살자수 및 자살증가효과 추정치.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로테여, 적어도 나는 당신 때문에 죽는다는 행복과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친다는 행복을 누리고 싶소.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기꺼이 용감하게 죽겠소. 아아, 그러나 친근한 사람을 위해 피를 뿌리고 그 죽음에 의해서 새로운 수백 배의 생명을 북돋운다는 것은 오직 소수의 고귀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것이오.” (괴테, 1774년)

 이 글은 19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von Goethe)가 쓴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청년 베르테르가 독일의 한 고장을 방문했다가 아름다운 여인 로테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로테가 끝내 약혼자 알베르트와 결혼하자 슬픔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이 대중에게 공개된 1974년 당시 유럽 전역에서 젊은이들의 자살 사건이 급증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연구하면서 ‘자살의 전염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lips)는 이를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불렀다.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으로 정의되며, ‘동조자살’ 또는 ‘모방 자살’이라고도 불린다.

 ◇유명인사 자살․선정적 보도…‘모방자살 급증’

 다양하게 진행된 연구 중에는 미디어가 대중의 모방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 방식에 따라 자살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경고하며 언론에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실제 많은 연구결과가 ▲자살 관련 보도가 많을수록 ▲1면 헤드라인에서 다루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할수록 ▲자살을 미화하거나 내용이 선정적일수록 모방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연예인 등 유명인사 ▲TV보다는 신문의 경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로 자살 위험군에 속하는 청소년과 노년층 ▲여성보다는 남성 ▲위기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 더 모방 자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탤런트 고(故) 최진실씨 등 연예인의 잇단 자살 사건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됐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이 ‘2009년 사망원인 통계’와 통계청의 ‘사망원인별․월별 사망자 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유명 연예인이 자살한 이후 두 달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평균 606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진실씨가 자살한 2008년 10월 이후 두 달 동안 자살한 사람은 1006명이나 증가했다. 탤런트 故 안재환씨(2008.09)는 694명, 가수 故 유니씨(2007.01)는 513명, 배우 故 이은주씨(2005.02)는 495명, 배우 故 정다빈씨(2007.02)는 322명이었다.  

 또 자살 사건 ▲1개월 전 ▲해당 월 ▲1개월 뒤 ▲2개월 뒤 각각 자살자 수를 합산해 본 결과 자살 사건 한 달 전에 비해 한 달 뒤 자살 건수가 뚜렷하게 증가하다 두 달이 지나면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도자제…묘사‧단정도 주의” 윤리강령 마련  

 이 때문에 미국 독일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자살보도준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자살보도를 자제하고 자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도록 하는 이 권고안은 모방 자살률을 낮추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미국 록그룹 너바나(Nirbana)의 보컬 커트 코베인(Curt Cobain)이 숨진 채 발견된 1994년 4월 이후 한 달 동안 호주 청소년의 자살률은 오히려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를 연구했던 전문가들은 코베인의 부인이 남편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덧칠하지 않았고, 약물문제와 자살기도 경험을 알리는 등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기자협회가 2004년 10월 ‘자살관련 언론보도의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이 강령은 속보경쟁과 선정성을 강조하는 ‘경마저널리즘’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특히 언어적 표현과 암시하는 태도가 자살의 전염성을 유도할 수 있고 자살 사건의 특성도 모방 자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묘사를 금지하고 자살의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계에서도 자살보도와 관련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언론 관련 단체들은 최근 자살보도에 대한 행사를 잇달아 개최하며 모방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제주도에서 전국 언론사 사회부 경찰서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인권과 생명사랑’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자살보도 속보경쟁을 지양하고 사회적 책임과 여론형성을 통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언론의 공적 책임 간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지난 1일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한국 사회의 자살과 언론보도’ 심포지엄을 열어 언론의 인식 전환과 법‧제도적 장치 마련 등에 대해 논의했다.

 ◇“언론인 교육․인식전환 필요…공적책임 접점 모색해야”

 전문가들은 언론인들이 자살예방 보도방식에 대해 숙지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 마련과 환경 조성 역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천의대 임정수 교수(예방의학과)는 “자살 관련보도가 많거나 중요하게 보도될 때 내용이 선정적일 경우 모방 자살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언론보도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특히 국내외에서 권고하는 자살보도원칙을 언급하며 “자살미화, 자극적인 표현, 자살방법에 대한 직접적이고 자세한 묘사 등을 자제하고 자살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대학 이종화 교수(경찰학과)는 “질병관리본부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응급실로 후송된 자살시도자 16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가족구성원 또는 연인과의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46.5%에 달했다”며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통계와 대책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인 자료 수집과 분석, 연구를 통해 자살기도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구조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 보도 윤리강령에 지나치게 충실할 경우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기자협회 세미나에선 고(故) 장자연씨 사망사건, 이른바 ‘연예인 성접대 사건’과 관련, “만약 언론이 윤리강령에만 지나치게 충실했다면 이 사건은 ‘20대 신인 여배우 사망사건’으로 묻혔을 가능성이 높고 각계의 고발과 시정 움직임, 제도 개선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이 제기됐다.

 이어 “신중하고 책임 있는 보도로 자살을 예방하는 것을 언론의 ‘소극적 공적책임’이라고 한다면 여론을 환기 시키고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을 ‘적극적 공적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양측 간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가가 과제”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자살보도 윤리강령 (한국기자협회, 2004.10)

▲언론은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자살 사건에 대한 보도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자살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살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해서는 안 되며 주변상황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언론은 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쉽고 유용한 방법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해서는 안 된다. 단,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자살 등과 같이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와 그러한 묘사가 사건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언론은 자살 동기에 대한 단편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자살 현상에 대해 보도할 때에는 확실한 자료와 출처를 인용하며, 통계 수치는 주의 깊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고 충분한 근거 없이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자살 사건의 보도 여부, 편집, 보도방식과 보도 내용은 유일하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결정하며,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살보도를 위한 실천 요강

<이것은 피하라>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새로운) 자살 방법을 소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기 ▲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하기 ▲자살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기 ▲자살한 사람의 매력이나 명성에 누가 될까봐 정신건강 상태나 약물중독과 같은 문제를 쉬쉬하기 ▲‘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死因)을 자살로 밝히기 ▲자살한 사람의 사진 넣기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기사로 싣기

<이것을 넣어라> ▲자살률의 최근 경향 ▲최근의 치료 및 상담의 발전 양상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자살하지 않고도 절망에서 일어선 사람들의 사례 ▲자살의 신화(잘못된 상식) ▲자살 징후들 소개 ▲자살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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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06호(12월20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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