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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팽목항까지…끊이지 않는 세월호 추모 발길

등록 2017.03.27 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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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세월호 참사 1077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7.  guggy@newsis.com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세월호 참사 1077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7.  [email protected]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세월호의 상처를 품고 있는 진도 팽목항을 찾는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77일, 세월호가 물 위로 떠오른 지 나흘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

 5명의 노인들이 미수습자 9명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보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50년 전 교수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주에 정착한 정정윤(75·여)씨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귀국한 뒤 곧바로 진도로 향했다.

 정씨는 "자식을 기르는 입장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똑 같은 마음이다"며 "한 번은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향소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미수습자 9명도 반드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형수인 정씨와 함께 온 김종민(67)씨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씨는 "형을 따라 이민 간 지 30년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세월호 사고 이야기를 들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곧바로 인양이 됐다"며 "사고 직후 곧바로 인양을 했다면 미수습자 9명은 없었을 것 같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왜 이제야 인양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김영석(58)씨는 이날 하루 휴가를 내고 아내 한경옥(55·여)씨와 팽목항을 찾았다.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세월호 참사 1077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7.  guggy@newsis.com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세월호 참사 1077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7.  [email protected]

 부부는 팽목항 방파제에 걸린 노란 리본을 따라 걸으며 추모객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50일 전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한씨는 "장례식을 마치고 아버지 서류를 떼러 갔는데 성함 옆에 '사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엄청난 상처였다"며 "분향소의 아이들 사진 이름 앞에 '고(故)'가 붙어 있더라.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지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미수습자 9명에게 우리는 '돌아오라'는 말만 하고 있다. 정작 우리가 찾아야 했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며 "반드시 찾아서 9명 모두 가족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 영석씨는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울컥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혼자 가방을 메고 서울에서 이날 처음 팽목항을 찾은 류성묵(53)씨는 "그 동안 마음의 빚이 이었다. 세월호가 인양된 이 시점에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세월호 침몰 당시 빨리 일을 진행하지 못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다"며 "인양됐으니 이제라도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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