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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원한 건 없다'…'왕위주장자들'

등록 2017.04.02 11: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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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왕위주장자들'. 2017.04.02(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왕위주장자들'. 2017.04.02(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스쿨레 백작은 왕이 된 이후 의심과 의혹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왕이 되고자 했으면서도 왕이 된 이후 정작 확신이 없다.

 부하들이 '우리는 영원할 거'라고 외치자 호응해주지만 혼자 있을 때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고 토로한다.

 서울시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이 154년 만인 지난달 31일 국내 초연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연극 '왕위 주장자들'은 정치극이 아닌 심리극이었다.

 13세기 노르웨이에 스베레왕 서거 후 호콘왕과 스쿨레 백작이 벌이는 왕위 다툼은 장미 대선을 앞둔 2017년 대한민국을 반영하지만 정치적이기보다 심리적이다.  

 호콘왕은 자신의 소명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감으로 표출한다. 니콜라스 주교가 스쿨레 백작에게 호콘왕이 진짜 왕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지만 확신으로 가득찬 호콘왕은 신이 돕는 듯하다.

 그가 스베레왕 서거 후 6년간 섭정을 통해 왕국은 자신의 것이라 믿고 있는 스쿨레 백작에게 잠시 패했어도 다시 왕위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다.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입센이라 사전 정보 없이 극을 보는 관객들은 잠시 헤맬 수 있다. 하지만 역동적인 극의 전개 리듬에 야망과 욕심, 그리고 의심과 번민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하모니를 보고 있노라면 어려운 악보처럼 보이는 이 텍스트에 금세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서울=뉴시스】연극 '왕위주장자들'. 2017.04.02(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왕위주장자들'. 2017.04.02(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특히 왕위를 주장하는 탐욕에 스스로 무너지는 스쿨레 백작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고 탐욕을 부리는 모든 이들에게 역시 생채기를 낸다. '왕위주장자들'이 단지 정치적인 것을 넘어 훨씬 더 큰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이유다.  

 무대디자이너 박동우가 천장에 매단 커다란 나무는 뿌리가 공중에 내려져있는데 이는 결국 헛된 욕망의 뿌리는 취약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상징화하는 듯하다.  

 스쿨레 백작 역의 유성주, 니콜라스 주교 역의 유연수, 호콘왕 역의 김주헌 등은 열연하다. 배우들과 인물들의 뜨거운 혼란스러움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의 서늘한 미니멀리즘 연출과 맞물리며 균형미와 절제미를 뽐낸다.

 154년 전 노르웨이 극작가 작품이 2017년 한국에서 멋스러운 통찰력으로 통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인 서울시극단의 20주년 기념작으로 더할 나위 없다.

 스쿨레 백작이 본래 사랑하는 여인과 나누는 사랑의 밀어는 어느 고전보다 아름답고 시적인데,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각색자인 작가 고연옥은 심리적인 부분을 잘 톺아봤다. 오는 4월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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