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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너그러운 변호사들, 그들만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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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12-01 15: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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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지난 가을 늦은 밤, 서울 종로구 한 칵테일 바에 10여명의 변호사들이 모였다. 얼마 후 일행 일부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들은 한 사내를 소개했다. 그는 동석해 잔을 기울이다 그만 술에 취했다. 그때부터였다.

 "너희들은 내 덕에 월급 받는 거야", "지금부터 허리 똑바로 펴고 앉아라", "날 주주님이라 불러라"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만취해 거의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를 부축하려 두 명의 변호사가 나섰지만 돌아온 건 손찌검이었다.

 한 변호사는 뺨을 맞았다. 다른 변호사는 머리채가 잡혔다. 유쾌하게 시작됐던 회식자리는 그를 귀가시킨 뒤에야 불쾌하게 파장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을 훌쩍 넘겨있었다.

 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이들은 변호사였다. 법리를 무기로 사소한 위법행위도 꿰뚫고 있는 이들이다. 요즘 말로 척하면 척, '각'이 나왔을 터다. 폭행 사실은 명백했고 주변 증언자들도 있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든 검찰에 고소를 하든 조치를 취하는 게 상식적이다. 변호사들이 한자리에서 집단으로 봉변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들은 달랐다. 아무 데도 신고하지 않았다. 사건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후였다. 당시 경찰 관계자가 "우리도 기사를 통해 알게 돼서 파악 중"이라고 할 정도였다. 사건 내사는 서울청 광역수사대가 맡았다. 그만큼 '중하게' 다룬다는 의미였다. 급기야 2만여 명의 회원을 둔 대한변협에서 변호사들 명예가 짓밟혔다며 '대신' 고발장을 접수했다. 경찰의 내사는 곧 수사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상황은 좀체 변하지 않았다. 경찰은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기까지 꽤 애를 먹었다. 이들은 사건이 커져 연락 받기조차 꺼려한다고 했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피해자 두 명은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다. 상대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모욕죄는 친고죄로 당사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하는데 그럴 의사 또한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폭행 사건에서 모든 이들이 처벌받는 건 아니다. 합의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 피해자들의 대응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피해자들은 다름 아닌 변호사다. 그것도 국내 최대 로펌 소속이다. 단체로 망신을 당한 자존심 강한 법조인들이 아무런 법적 대응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 가해자가 한화그룹의 막내아들, 스물여덟살의 김동선이며 해당 그룹이 변호사들이 소속된 대형 로펌의 주요 고객이란 점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다. 만약 술자리에 끼어들어 난동을 부린 가해자가 똑같은 나이의 소시민이었다면?

 가해자는 사과했고 피해자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경찰은 CCTV 복구 등을 통해 추가 피해 상황을 조사 중이지만 발견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소극적이니 경찰도 맥빠진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인데, 뒷맛이 씁쓸하다.

 newk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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