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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서울'을 소설로 쓴건 내 인생 중요한 사건"

등록 2017.12.14 15: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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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서울'을 소설로 쓴건 내 인생 중요한 사건"

■'빛나-서울 하늘 아래' 출간 기념 간담회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이번 책 출간은 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잘 알지 못하던 '한국'이라는 나라, 서울에 대해서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빛나-서울 하늘 아래(원제: Bitna–sous le ciel de Séoul)'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빛나'는 서울 하늘 밑에서 벌어지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논한 작품이다. 한국에 관련한 책은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해 10월 제주 우도의 해녀에게 바치는 소설 '폭풍우'을 출간한 바 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는 지난 2001년 첫 한국 방문 이후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오갔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년간 석좌교수로 지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흥미와 애정을 느꼈다.

그는 "서울은 같은 곳을 6개월 후에 가보면 또 달라져 있었다"며 "서울은 늘 변화하는 도시인데, 파리는 고정되어 있다. 변하지 않는 도시"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이 상상력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다"며 "서울을 자주 오게 되면서 실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번역을 지원해준 서울시와 출판사 서울셀렉션, 번역가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르 클레지오 "'서울'을 소설로 쓴건 내 인생 중요한 사건"

르 클레지오는 "서울이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평했다. 그에게 최첨단 시설과 고층건물이 최악이라면, 최선은 번화가 뒤에 숨은 좁은 뒷골목과 한적한 언덕길, 기품서린 북악산과 나지막한 야산들, 북한산과 그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카페들이다.

여행 마니아인 그는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을 다녔고, 여행기가 아닌 소설을 통해 서울과 서울 사람·서울 풍경을 담기로 결심했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빛나'다. 대학에 갓 입학한 19살 전라도 어촌 출신 소녀 '빛나'는 서울에 올라온다. 그녀는 서울을 낯설어하고 외로움을 탄다.

그러던 중 빛나는 우연히 불치병을 앓는 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집 안에 갇힌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살로메는 빛나와 함께 그의 이야기 속으로 상상 여행을 떠난다.

빛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 모두 5편이다. 한국전쟁으로 북에 있는 고향을 떠난 조 씨와 비둘기 이야기, 신비로운 메신저 키티가 전해주는 쪽지를 통해 이웃 간 연대와 관계성을 회복하는 이야기, 버려진 아이 나오미와 그녀를 품고 살아가는 한나가 또 다른 생명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 아이돌 스타가 되지만 탐욕과 거짓말에 희생당하는 가수 나비 이야기, 그리고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빛나가 느끼는 일상의 공포와 도시에서의 삶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한국의 전통, 종교, 역사, 세대 갈등, 남북문제, 정치 사회 문제, 음식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르 클레지오 "'서울'을 소설로 쓴건 내 인생 중요한 사건"

그는 "이화여대 학생한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스토커에 관한 부분도 넣었다"며 "처음에 서울에 왔을 떄 누군가 나에게 '언젠가 서울에서 다시 만나리'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당시에 굉장히 낙천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르 클레지오는 거대도시 서울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도시 풍경을 묘사하고 낱낱의 이야기들을 연결하면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따뜻한 인간애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또 도시 구석구석에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절망과 슬픔, 소외와 좌절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이야기에 목말라 하는 여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빛나의 이야기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삶을 지키고 살아내려는 굳센 용기를 그렸다. 절망과 좌절을 통해 생은 더욱 빛나고, 미래는 희망차다고 말한다. 르 클레지오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이다.

곽효환 시인은 "세계적인 작가가 한국에 대해 소설을 썼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며 "한글 간판도 쉽게 읽는다. 이번 책에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 세대갈등, 고립된 도시인들의 삶 이런 것들이 주제로 나타나있다"고 전했다.

송기정 번역가는 "르 클레지오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열렬한 독자여서 기뻤다"며 "늘 한결 같아서 르 클레지오를 존경한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뭐가 달라졌는지 물어봤더니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벨상 수상은 우연이지 결코 현실이 아니다. 나한테 현실은 하얀 종이, 컴퓨터'라고 했다."
르 클레지오 "'서울'을 소설로 쓴건 내 인생 중요한 사건"

르 클레지오는 "살기가 쉽지 않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빛을 내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빛나'라고 지었다"며 "빛나에게 서울은 처음엔 낯선 도시였지만 도시에 대한 사랑도 생기고, 삶에 대한 이야기도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여성에게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대 여성은 뉴욕이든 파리든 살든 다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또 어떻게 독립할 것인가 등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두 딸을 두고 있다"고 밝힌 그는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했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 문학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냈다. "성공한 여성 작가들이 많다. 한 예로 한강 작가를 들고 싶다. 위대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그녀 역시 여성의 지위, 삶을 그리고 있다."

출판사 서울셀렉션 측은 "이번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며 "영어판은 12월 하순, 프랑스어판은 내년 3월 뒤이어 출간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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