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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박이 묻지마 주택공급 이제 그만…"맞춤형 주택을 달라"

등록 2018.12.1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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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중년·장애인·반려동물·청년 등 다양한 취향 반영 요구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주택도시공사 개최 서울하우징랩 이슈텃밭 오픈포럼 장면. 2018.12.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집값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종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려는 가운데 획일적인 형태의 집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틀로 찍어내듯 특징 없는 주택을 무작정 공급하지 말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반영해 달라는 취지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최근 주최한 '서울하우징랩 이슈텃밭 오픈포럼'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은 자신을 독거중년으로 소개하며 "기존 주택시장에서 공급되는 집들은 너무나 비싸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비싼 집을 소유할 여유도 없지만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집을 사기도 싫다"며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의 촘촘한 입주자격조건은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김 이사장은 "수많은 독거중년은 지금 관계가 단절된 작은 집과 방에서 홀로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며 살고, 아니 살아내고 있다"며 "혼자 밥해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다. 간편식 위주 식사가 반복되니 건강을 잃기도 쉽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보호자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한다.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가 이제는 버겁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택배 하나 배달시키기도 조심스럽고 배달음식도 시켜먹을 수 없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불안하고, 낯선 사람은 더욱 불안하다"며 "결국 집은 잠만 자고 나가는 온기 없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러면서 "충분히 독립적이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집, 굳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쫓겨날 염려 없는 집,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집은 없을까"라며 "양적 공급 위주 주택정책에서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정책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주거공유 목적의 커뮤니티 육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는 주택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이용하기 불편하다. 일괄 공급되는 주택은 반려동물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은 고스란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몫이다.
 
이경미 펫빌리지 대표는 "도시화가 낳은 주거형태는 인간을 이간질시키는 한편 동물들을 '안에 사는 애완동물'과 '밖에 사는 유기동물'로 갈라놨다"며 "길거리를 헤매는 유기동물 뿐 아니라 집안에서 애완으로 살아가는 동물 역시 도시화된 주거환경과 맞지 않아 울부짖고 있다.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이웃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도시화로 단절된 이웃간의 관계는 반려동물을 매개로 다시 회복될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도시화 속에서 인간보다 더 약자인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공급하는 주택은 장애인에게 좌절감을 준다. '보통사람' 기준으로 설치된 싱크대 등 가구는 장애인에게는 일상의 불편이자 불만이다.

이경희 화성장애인야간학교 교장은 "저는 두 다리에 힘이 없는 관계로 보장구를 이용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주방일을 할 때 싱크대가 높아 늘 옷소매가 젖었고 그릇을 선반에 올려놓으려면 팔의 힘으로 싱크대 위로 올라가 앉아서 그릇을 정리하고 선반 청소를 해야 했다"며 "손님이 와도 민망한 모습으로 그렇게 해야 했다. 그렇게 저는 늘 집안일을 하면서 서커스 외줄타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싱크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게 하고 의자를 내장시킨다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 싱크대 문들을 미닫이로 설치해야 한다"며 "저소득층에 이런 싱크대가 지원될 수 있게 모든 주공아파트가 이 같은 싱크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현희 고령친화무장애주택협동조합 연구개발실장도 "23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목발을 사용해 부엌일을 했다. 최근 나이가 들어가면서 퇴행성관절염이 진행돼 서서 일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싱크대 앞에서 서서 일할 때 무릎관절이 특히 더 아팠다"며 "그러면서 싱크대에 굳이 서서 일해야 하는지,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안 되는지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기존 싱크대는 공급자 중심으로 제작·보급됐다. 사용자의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우리나라 국민 평균키만을 기준으로 대량생산돼 보급됐다"며 "이로 인해 평균 키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분리되고 배척돼왔다. 비장애인임에도 키가 현저하게 크거나 작거나, 장시간 주방일로 힘들어하는 주부도 싱크대가 힘들어도 참고 사용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두가 사용 가능한 유니버설 싱크대는 아주 중요한 주방가구다. 건축 설계 단계에서 유니버설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한 지침이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산업통상자원부나 국토교통부는 싱크대 하부장 설비를 유니버설 싱크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층을 위해 공급하는 주택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역시 공급자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짓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경서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은 "생활형식이 변화함에 따라 1인가구에게 임대할 도시형 생활주택을 공급하고 있다지만 이 또한 기존 체계에 덧대는 방식으로만 작동하고 있다"며 "청년의 경우도 본래 있던 공공임대주택 물량 중 청년 특화 전형을 마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이성애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 이혼한 사람들, 혼인을 해도 자식이 없는 사람들 등 이미 생활양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기존 가족제도만 공고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가는 자신이 노멀리티(정상성·건강한 행동을 병리적 행동으로부터 구별할 때 사용하는 개념)의 재생산 주체라는 사실을 이용해 신혼부부 희망타운과 같은 괴이한 주거정책을 만드는 중"이라며 "이는 정상성에 편입하지 않으면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직무방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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