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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다페스트의 눈물' 공감…취재관행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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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4 1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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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뉴시스】조인우 기자 =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의 일이다. 우리 국민 33명이 탄 허블레아니호를 집어 삼킨 그 강의 빠른 물살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야윈 뒷태의 한 남성이 있었다.

얼굴 빛은 어두웠고, 행색은 단출했다. 강둑에 서서, 그러다가 강변에 앉아서 한참을 그 야속한 강만 지켜봤다. 깊은 한숨을 수시로 쉬다가, 동행한 사람들과 이따금 대화를 하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귀에 꽂히는 한국어. 아들에 대한 얘기로 들렸다.

그리고 참사 현장인 그곳엔 한국인 기자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대형 사고 발생 직후 국내 언론의 '전통적인 취재 1순위'는 '사연 발굴'이다. 그 중에서도 우선 순위는 사망자나 실종자의 사연 발굴이다. 해외 출장까지 왔으니 뭐라도 해서 돌아가야 했다. 실종자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포착된 그 순간, 생계형 기자인 나는 고민했다.

가까이 다가가야 하나, 심경이 어떠냐고 물어봐야 하나. 말을 붙였는데 가로막혔다는 면피용 보고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하나. 내가 망설이는 사이 타사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건다면, 그걸로 타사에 대문짝만한 인터뷰가 나온다면,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그 기사를 보고 '너는 뭘 했냐'고 묻는다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까지 하고싶진 않다는 마음으로 현장을 떴지만 한국 시간으로 다음날 신문이 나오기까지는 마음이 영 불안했다. 그곳에서 그 남성을 본 십여명의 기자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행이었는지, 아니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 기자들은 부다페스트 현장에서 유가족의 얼굴을 찍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했다. 펜기자들은 매번 번뇌하며 망설이다 이내 함께 돌아서곤 했다. 지난 2주간, 적어도 내가 있던 곳에서 피해 가족들에게 무리하게 접근하는 기자는 없었다. 대서특필 돼 나를 마음 졸이게 하는 현장발 유가족 취재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에게 말을 붙이려다 경멸 섞인 눈빛을 되돌려받은 수습기자 때의 일이 새삼 생각났다. 몇년이 지난 허블레아니호 사고 현장은 위에서 시키니까, 해보라고 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유가족에게 다가가던 그때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확실히 이 바닥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적대감은 여전했다. 묵었던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가족에게는 경계 가득한 시선을 받았다. 매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는 이런 말이 나와 취재진을 단속했다.

"가족 분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언론도 낡은 취재 관행을 바꿀때가 됐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스스로 증명할 몫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취재를 가게 될 것을 안다. 사건 기자라면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때는 가족들에게 접근해야할지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내 모습을, 동료들의 모습을 보지 않게 되길 바란다.

한국 기자들은 이번 부다페스트 참사 현장에서 취재 관행에 변화를 줬다.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겐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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