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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궁창, 전동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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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23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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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햇볕은 다정한 손길로 찾아오지만/ 내 피는 점점 차가워져요// 빨래가 마르듯 살고 싶었는데/ 사철 내내 창고에 눈을 가득 쌓아두고/ 카스트라토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어제는 바보였고/ 오늘은 시궁창이었어요'('밤마다 먼 곳들이' 중)

198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한 전동균(57)의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에는 종교적 감성이 담겼다.

시인은 가톨릭 신자다. 하지만 종교적 죄의식이나 영적 각성에 몰두하지 않았다.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삶의 본질을 들여다봤다.

시 51편이 실렸다.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 속에서 삶과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는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슬픔과 고통뿐인 삶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와 기쁘다고."

'허리를 숙여/ 마당의 돌을 하나 주웠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들고 서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를 나를 때리며 위로하며 멀리 걸어왔지만/ 한발짝도/ 내 가슴 밖으로 나가지 못했군요'('검은 빵' 중)

'수리를 하긴 했지만 좀 낡았답니다// 이 갈색 탁자는 아버지가 만드신 것/ 마른 꽃들이 꽂힌 작은 항아리는 어머니가 아끼시던 거예요/ 제 것은 별로 없어요'('1205호' 중)

시인은 "경주 대릉원 고분동네가 가끔 생각난다"고 했다. "천마총이 발굴되면서 마을은 지상에서 지워졌고, 나는 대구로 서울로 부산으로 떠돌게 되었지만, 이따금 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소년은 그곳의 사람들과 흙냄새, 오래된 한옥들과 마당의 연꽃무늬 돌들, 무덤 위로 떠오르는 달빛과 짐승 울음소리, 새벽의 흰 물그릇··· 그 어둑하고 신비한 삶의 풍경을 더듬더듬 불러내곤 한다. 말을 의심하면서도 말을 구하고 또 의지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징검돌을 놓는다. 징검돌일까?" 132쪽, 9000원, 창비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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