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담화는 한미에 대화 분위기 조성하라는 요구
군사연습 끝난 시점에 F-35A 도입 늦추라는 주문
핵실험 재개, 중국 비호 등 협상 대비 카드 강화중
【서울=뉴시스】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2019.07.0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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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북한이 22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위협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군사적 압박이 동아시아 지역에 신냉전을 불러온다고 주장함으로써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 편을 들어 미국에 보다 강경하게 맞설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우선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한국군의 전력 증강을 핑계로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밝힘으로써 북미 핵협상을 중단시킬 수도 있음을 압박하는 한편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음을 위협했다.
북한은 또 미국의 중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와 F-16V 전투기 대만 판매 결정이 지역(동아시아)의 군비경쟁과 대결분위기를 고취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최근 미-중간 군사적 대치가 심화되는 국면에서 중국 편에 설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이 이같은 입장을 밝힘에 따라 지난 6월말 판문점 트럼프-김정은 회동에서 핵협상을 재개키로 한 합의가 자칫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 외무성 담화는 중의적이고 다목적인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표면적으로는 한미 양국을 향해 동맹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군사연습은 물론 미국의 첨단무기 대한국 판매까지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대해 한미동맹의 해체를 노리고 군사적, 정치적 압박을 강화하는 전략을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에 더이상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부터다. 김정은 연설은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거절하고 회담을 결렬시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김위원장과 이외상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1차로 제재 해제를 얻어내고 그 뒤에 한미동맹의 약화 내지 해체를 추구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제재 해제가 무산되자 곧바로 한미동맹을 겨냥한 미국과 우리를 향한 군사적, 정치적 압박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제재 해제 요구를 포기했다고 판단하기는 섣부르다. '미국이 부담스러워 할 군사분야 조치'를 직접적으로 요구함으로써 미국과 협상이 재개될 경우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맞대응할 카드를 만들고 있는 측면이 있다. 당초 영변 핵단지의 폐기에 대한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먹히지 않자 거꾸로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카드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이 제시한 영변단지 해체를 넘는 수준의 비핵화 요구를 다시 제기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포석인 셈이다.
북한이 이번에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와 중거리 미사일 시험을 들고 나온 것은 대미 압박의 효과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이래 북중 양국은 부쩍 왕래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군의 권력 서열 1위인 김수길 총정치국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 군부 인사들과 교류했다. 북한군 최고위 인사로는 16년만에 방문한 것으로 중단됐던 북중간 군사교류가 복원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행보였다. 당시 시주석은 북한에 대한 중국 관광객을 500만명까지 늘리고 80만t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중국과 밀착하는 분위기 아래 미중 대립 국면에서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들면서 미국을 향해 대화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영변 핵단지 포기→한미동맹 해체→핵실험 등 재개→신냉전 국면에서 중국 비호' 등으로 카드를 갈수록 키우는 모습이다. 마치 이래도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라고 을러메는 듯하다.
북한의 움직임에는 시한에 쫓기는 듯한 모습도 비쳐진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는지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밝혔었다.
회담 결렬에 화를 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하고 연말이라는 시한을 제시한 것 자체가 북한이 미국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연말이라는 시한은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 일정을 고려한 것이다. 대선이 본격화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 집중하기가 불가능할 것이고 트럼프가 재선될 지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미국 조야의 북한에 대한 강경 분위기를 볼 때 트럼프가 아닌 새 대통령이 들어설 경우 북한과 협상에 나설지조차 자신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데도 미국은 하노이에서 제시한 비핵화 요구 수준을 낮추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협상 재개를 촉구하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만나서 대화하자는 선을 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최근 우리 정부에 대해 막말과 조롱을 퍼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정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를 위해 한미동맹 포기도 불사할 수 있음을 미국에 압박하라는 뜻이다. 갈수록 조롱과 막말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 역시 북한이 초조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무성 담화는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문장에는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강조점이 함께 담겨 있다.
이는 한미군사연습이 끝난 현 시점에서 F-35A 도입 일정을 늦추는 정도로 한미가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해 성의를 보인다면 북미대화, 나아가 남북대화에도 나설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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