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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슈]가야시대 사찰 유적지 발굴…가야불교 전래 입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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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0 06:30:00
48년 가야불교 전래 입증되면 고구려 372년 보다 324년 앞서
사찰 목탑 기둥 유적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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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뉴시스】김상우기자= 경남 김해시는 봉황동 가야왕궁 유적지에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목탑으로 보이는 가야사찰 건물 유적을 발굴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건물 기둥 유적지.  (사진=김해시 제공). 2019.08.26 photo@newsis.com


 【김해=뉴시스】김상우 기자 =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주로 경상남도 대부분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영유하고 있던 고대 국가 가야(伽倻) 시대 사찰 유적지로 추정되는 대규모 목탑이 최근 발굴돼 가야불교 전래가 입증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야불교의 시작은 서기 48년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를 창건한 김수로왕비인 허황옥의 도래로부터 시작한다.

 삼국유사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조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ayodya)의 공주였던 허황옥이 부왕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향해 가려했지만 수신(水神)의 노여움을 사 가지 못했다.

 허황옥은 다시 부왕의 명에 따라 파사석탑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그제서야 순조롭게 바다를 건너 금관국의 남쪽 바닷가에 정박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48년 인도에서 김수로왕과 혼인을 위해 배를 타고 오면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이 현재 김해시 구산동 허왕후릉에 있다.

 당시 허왕후와 함께 온 동생 장유화상, 이후 허왕후의 왕자 7명이 스님이 됐다는 유적지가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야불교 주요 유적지는 김해 불모산 자락에 있는 장유사, 신어산에 있는 은하사, 분성산 해은사, 밀양 만어사, 하동 칠불사, 남해 보리암 등이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유물을 찾지 못해 갑론을박 전설로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경남 김해시는 봉황동 303-7 일대 가야왕궁 유적지에서 높이 20m 사찰 목탑으로 보이는 건물 유적지가 발굴됐다.

 건물 유적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가야시대에 확인되는 초석 하부를 지탱하기 위한 적심석(積心石)이다.

 적심석은 건물 기둥을 세우기 위해 주춧돌 아래 땅바닥을 자갈 등으로 다지는 시설이다.

 적심석은 평면 형태는 정방형으로 중앙에 네 개의 기둥을 가진 중심부를 마련하고 이를 둘러싼 외부공간인 퇴칸(退間)을 두었다. 퇴칸은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규모는 길이 10m, 너비 10m 가량이다.

 유적지를 발굴한 한반도문화재연구원은 건물지 중심부에 사용된 적심의 규모가 지름 180㎝, 깊이 100㎝에 달하는 점으로 보아 크고 높은 기둥을 세우고, 중심부 건물은 목탑에서 확인되는 사천주(四天柱)와 유사해 목탑지로 보았다.

 이 같은 하부시설로 볼 때 높이 20m 4층 규모의 왕실사찰 목탑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학술자문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발굴조사 현장과 출토유물 등을 살펴본 후 조사기관의 고고학적 해석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조사지역은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의 동쪽에 위치하며 건물지 서쪽 경계를 이루는 소방도로 개설시 가야시대 토성지 일부가 확인된 바 있다.

 이 지역은 김수로왕릉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가야시대 왕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발굴작업이 이어지는 주요 사적지이다.

 이에 따라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는 이름만 전해오는 왕후사, 호계사 등 가야사찰의 실체 규명이 이뤄질지 주목되고 있다.

 그간 설화나 조선시대 이후 기록 등 제한된 사료만으로 사찰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왕궁지 일대에 왕실사찰이 위치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가야불교가 공인되면 고대 한국의 불교전래가 324년 앞당겨 진다.

 불교의 전래는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 문화적·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의미하는 사건으로 고대 씨족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을 대체하는 보편적 윤리와 이념을 갖춘 중앙집권적 국가 형성의 토대가 된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에 중국에서 전래되고,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에 동진에서, 신라는 눌지왕 때(417~458) 이미 불교가 들어왔으나 국가적 공인은 법흥왕(527)에 의해 공식 인정을 받는다.

 따라서 서기 48년 가야불교 전래가 성립되면 고구려 보다 앞서는 것은 물론 4국 시대가 형성된다.

 이에 따라 김해시는 가야 왕궁지와 가야불교의 실체를 밝힐 것으로 보고 유적의 보존과 활용 방안 마련에 나섰다.

 목탑이 발굴된 인근 사적지를 추가 발굴하고, 고고학자들의 광범위한 자문을 받는 고증작업을 벌인다.

 가야불교 사찰은 삼국유사에는 지명이 등장하는 호계사 왕후사 등이다. 삼국유사에 금관성 호계사 5층의 조각이 기묘한 파사석탑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파사석탑은 몇차례 이전을 하다가 지금은 허왕후릉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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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뉴시스】김상우 기자 =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석가모니 보리수’를 김해시에 기증하자 26일 가야 불교전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김해시 구산동 허왕후 릉에 있는 서기 48년 인도 공주 허황옥이 싣고 왔다는 불탑인 파사석탑. 2019.02.26    w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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