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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단아→거장' 매튜 본 "유행을 따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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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7 17:09:11
9년 만에 내한하는 댄스뮤지컬 '백조의호수' 안무가
2016년 현대 무용가 중 최초 영국 왕실 기사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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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 ⓒJohan Persson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용계의 이단아'로 통한 청년이 어느덧 예순이 됐다. 영국 안무가 매튜 본(59)은 '무용계를 발칵 뒤집은···'이라는 수식의 원조다.

1995년까지만 해도 '백조의 호수'는 유연하고 가녀린 여성 무용수의 너울거리는 이미지로 관객에게 각인됐다. 그해 11월 영국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이런 선입견은 산산조각난다.

깃털 바지를 입은 남성 무용수들의 꿈틀거리는 근육이 비상했다. 본이 기존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한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를 세상에 선보이는 자리였다.  

당시 일부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며 극장을 떠났다. 하지만 압도적인 클라이맥스 이후, 분위기는 반전됐다. 남은 관객들은 열광적인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주요 언론의 지면은 호평으로 점철됐다.

본은 17일 e-메일 인터뷰에서 "우리가 영국과 세계 여러 도시에서 처음 이 공연을 할 때 종종 '중간퇴장'하는 관객들이 있었습니다"라고 '백조의 호수' 초창기 공연 때를 돌아봤다.

"보통 남성 관객들이었고 남성 백조와 왕자가 함께 춤추는 것을 견디지 못했죠. 몇 년이 지나고 작품이 더 알려지게 될수록 관객들의 태도는 바뀌게 됐어요. 현재는 더 이상 그런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당시 관객들에게는 이 작품이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예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니까요."

본이 세트 디자이너 레즈 브라더스톤, 조명 디자이너 폴 콘스타블 등과 함께 구상하고,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아담 쿠퍼를 주역으로 캐스팅하면소 꼴을 갖춘 '백조의 호수'는 고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방법의 전범이다.

머나먼 동화 속 이야기 같던 원작의 이야기 대신, 현대 영국의 왕실을 배경으로 삼았다. 유약한 '왕자'와 그가 갖지 못한 강인한 힘과 아름다움, 자유를 표상하는 존재 '백조' 사이에 펼쳐지는 가슴 아픈 드라마로 탈바꿈됐다.

왕자는 다채로운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호수와 화려한 왕실 무도회, 런던 뒷골목의 바(bar) 등 환상과 현실 속의 공간을 오간다.
 
본이 새로운 '백조의 호수'를 만든 까닭은 기존의 어떤 작품과도 비슷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무용단은 클래식 무용단이 아닌 현대 무용단이라,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해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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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이 당시 제일 먼저 떠올린 아이디어는 '남성 백조'였다. 여기에 영국 왕실의 스캔들이 더해졌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불화 이후 다이애나의 갑작스런 죽음, (앤드루 왕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사라 퍼거슨,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여동생인 마가렛 공주 등이 얽히고설킨 스캔들이다.

작품 속 왕자와 여왕이 찰스 왕세자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관계를 연상시키고, 금발미녀는 다이애나비가 떠오르는 등 본의 '백조의 호수'는 정신분석학을 빌려 다양하게 해석돼왔다. 특히 여왕의 품에서 유약하게 자라는 왕자는 현실의 은유였다.

본은 "당시 다이아나비와 찰스, 사라 퍼거슨, 마가렛 공주에 대한 뉴스가 가득했어요. 그 이야기들이 매일 같이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던 왕자를 내세운 것은 매우 시사적인 주제였다"고 설명했다.

본은 이 작품이 초연할 때 왕실 스캔들 부분이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성백조들의 등장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남성 백조가 춤추는 이미지는 매우 상징적이었죠.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백조의 호수' 이미지를 지워버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어요. 남성 백조들이 그러한 역을 잘 해냈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8년 뉴욕 닐 사이먼 시어터에서 124회를 공연하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무용 공연 기록을 바꿨다.

1999년 토니 어워즈 최우수 연출가상, 최우수 안무가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휩쓰며 미국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2000년에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에 발레리노로 성장한 성인 빌리(아담 쿠퍼)가 힘차게 도약하는 장면이 삽입, 더 유명해졌다.

2002년부터 세계 투어를 시작했고, 매진사례를 이어갔다. 2011년에는 공연 실황을 3D 카메라로 촬영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3D'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첫 선을 보였다. 2005년, 2007년, 2010년 재공연하며 8만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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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한동안 투어 공연을 하지 않다가 작년 무대, 조명, 의상을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백조 역으로 새롭게 합류한 윌 보우지어, 맥스 웨스트웰은 파워풀한 춤과 섬세한 연기로 호평 받고 있다. 이 투어 버전으로 본의 '백조의 호수'가 9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10월 9~20일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본은 "저희 무용단은 한국의 관객들이 우리가 돌아올 때마다 매우 따뜻하고 헌신적으로 맞아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면서 "저희의 충실한 팬들에게 새로운 버전의 '백조의 호수'와,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들을 소개할 것이 매우 기대된다"고 했다.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 결말은 컴퍼니와 안무가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있다. 하지만 본은 '백조의 호수' 결말을 다양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는 "우리가 모두 알듯이 백조의 호수는 비극적인 엔딩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차이콥스키의 음악 속에 이미 비극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본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타임)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영국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 상 역대 최다 수상자(8회)이자, 무용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2016년 현대 무용가 중 최초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 받은 거장이다.

 무용계의 이단아로 통하며 일부에서 배척 받았던 새내기가 이제 명실상부 주류에 서 있다. 자신이 안무한 작품이 비판 받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신인 안무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유행을 따르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마세요.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지세요. 그러면 당신의 작품은 독창적이고 진실하고, 독특한 당신만의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백조의 호수'가 초연 후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연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파격적인 작품이더라도 반복해서 공연하면 클래식이 된다. 

"'백조의 호수'는 현재 출연하는 젊은 무용수들을 포함 많은 젊은 관객들이 무용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 줬습니다. 현재 '백조의 호수'에 출연하는 많은 남녀 무용수들이 그들 부모님 또는 학교를 통해 처음 본 무용 작품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들이 이제 이 작품의 일부가 됐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아직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작품을 계속 공연하는 이유입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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