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조사로 북미 핵협상 지연 가능성 커졌다
'하노이 회담 결렬 미 국내정치 때문' 악몽 재연
김정은 제시한 연말 시한 현실적으로 불가능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낮아져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2019.06.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미 의회의 탄핵조사가 북미핵협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되고 있다. 특히 북한으로선 미 국내정치가 북미 핵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악몽과 같은 일이다.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미 국내정치가 큰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는 당시 회담과 겹쳐 진행되던 마이클 코언 트럼프 대통령 전 개인변호사에 대한 미의회 청문회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을 결렬시킨 뒤 3월3일자 트윗에서 “이것이 (내가 회담에서) 걸어나온 것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었음을 인정했었다. 또 회담 결렬 직후 하노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그런 거짓 청문회가 이처럼 엄청나게 중요한 정상회담 와중에 진행됐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핵협상 실무책임자이던 스티븐 비건 대북 특사는 1월말 미 스탠포드대에서 가진 강연에서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해제는 없다'는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상당히 누그러뜨려 유연한 협상 자세를 밝혔었다. 또 당시 우리 정부도 북한측에 미국의 입장이 달라졌음을 누누이 설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과감한 핵담판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었고 평양에서 베트남까지 7000km를 열차로 58시간에 걸쳐 이동하는 요란한 행보를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임했었다. 회담에서도 영변핵단지 전부의 폐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경제제재의 부분적 해제를 맞교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내놓았었다.
그러나 막상 회담은 결렬됐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이 코언 변호사 의회 청문회로 미국내 여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북한과 '완전하지 못한' 비핵화 방안에 합의할 경우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회담 직전까지 이어지던 낙관적 전망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결렬시키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후 북한은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회담결과를 낙관하던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행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었다. 이는 최고지도자의 외국행을 사전에 알리지 않는 기존 관행을 깬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결렬됨으로써 최고지도자가 잘못 판단했다는 북한 주민들의 의구심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최고지도자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는 '수령 무오류설'이 깨지는 등 김위원장의 권위를 훼손하는 '대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미국의 정치적 셈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또 3월 중순 최선희 부상은 평양에서 가진 외신 기자회견에서 "애당초 미국 측은 6·12 공동성명을 리행하려는 의지가 없이 저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르는 계산법을 가지고 이번 수뇌회담에 나왔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라고 당시 상황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서해 로켓 발사장을 다시 정비하는 등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려는 듯한 행동마저 보였었다.
이어서 4월 북미핵협상을 전담하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해임하고 김혁철 국무위원회 특별대사와 김성혜 통전부 책략실장을 숙청하는 등 관계자들을 문책하고 핵협상 전권을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기 전에는 미국과 마주하지 않을 것이며 이마저도 연말까지만 기다려보겠다고 최후통첩까지 발했다.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북미 핵협상이 지난 6월말 전격적인 판문점 트럼프-김정은 회동으로 재개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회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중순 실무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2달이 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의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당시 상황에 대한 분풀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31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조선의 불량행동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발언했다면서 실무협상 재개를 재검토하겠다고 비난했었다. 그보다 앞선 지난달 23일에는 이용호 외무상이 폼페이오 장관을 "미국외교의 독초"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후 트럼프 미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해임해 북한을 달랬고 비건 대북대표와 폼페이오 장관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유연한 입장을 보일 것임을 시사하고 나섰다.
그 결과 북한은 지난 20일 북미 핵협상 실무대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명의로 볼턴 보좌관 해임을 환영하면서 "나는 미국측이 이제 진행되게 될 조미협상에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리라고 기대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낙관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 우리 국정원도 최근 국회에서 2~3주내에 북미 핵실무협상이 열릴 것으로 전망하는 등 회담 재개 분위기가 크게 호전되고 있었다.
그런데 미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가 시작되는 돌발변수가 생긴 것이다. 북한으로선 하노이 회담 결렬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조만간 열릴 전망이던 북미 핵실무협상이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이 미 국내정치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판단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연말로 제시한 시한이 다가오는 때문에 실무협상을 진행하면서 미국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라고 통첩한 연말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렵게 됐다고 봐야 한다.
지금으로선 북미 핵협상은 북한이 바라는 일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을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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