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比 '피플파워' 혁명 36주년…원점으로 돌아간 민주화 운동

등록 2022.02.25 14:53:2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오는 5월9일 대선서 마르코스 아들 큰 차이로 여론조사 1위 달려

독재자에 맞서 싸운 운동가들, 어리둥절…당시의 범죄·실패 덮힐까 우려

[마닐라(필리핀)=AP/뉴시스]필리핀의 '피플 파워' 혁명 36주년을 맞은 25일 수도 마닐라 북부 케손시티의 피플 파워 기념비 앞에서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2.26

[마닐라(필리핀)=AP/뉴시스]필리핀의 '피플 파워' 혁명 36주년을 맞은 25일 수도 마닐라 북부 케손시티의 피플 파워 기념비 앞에서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2.26

[마닐라(필리핀)=AP/뉴시스]유세진 기자 = 36년 전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했던 '피플 파워' 혁명에 참여했던 민주 운동가 로레타 로살레스에게 '피플 파워'의 기억은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주고 있다. 그녀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 세력에 체포돼 고문을 받는 등 시달렸지만 결국은 마르코스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들이 군부의 지원을 받아 독재자를 쫓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전 세계에 권위주의 정권의 변화를 알린 '피플 파워' 혁명 36주년을 맞은 25일 로살레스의 싸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필리핀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행복감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오는 5월9일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에서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82살의 나이에도 마르코스 주니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로살레스는 "그(마르코스 주니어)의 부상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아버지가 저질렀던 범죄와 실패를 덮으려 할 것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로살레스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과거 세금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등 도덕적으로 타락해 공직에 있을 수 없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그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해 달라고 요청했다. 위원회는 그녀가 다른 5명의 인권 운동가들과 함께 제기한 탄원서를 기각했다. 이들의 탄원에 대한 상급심의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역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로살레스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2라운드"라고 말했다.

주지사와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지낸 64살의 마르코스 주니어는 독재자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지지율 조사에서 큰 차이로 앞서고 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혐의들을 "거짓말"이라고 반박했고, 과거에 대한 논란은 접어둔 채 일관되게 통합에 대한 요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86년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나흘 간의 '피플 파워' 혁명은 후안 폰세 엔릴 당시 국방장관이 쿠데타 음모 발각 후 마르코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시작됐다. 피델 라모스 당시 참모총장이 곧바로 합류했고 필리핀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필리핀 국민들이 반기를 든 군 병력에 대한 인간 방패를 자처했고, 묵주를 든 수녀, 사제, 민간인들이 평화적 봉기를 진압하려는 정부군의 탱크 앞에 무릎을 꿇고 가로막아 결국 독재자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고 집권 당시 50억~100억 달러를 부정축재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1989년 세상을 떠났다. 하와이 법원은 나중에 마르코스가 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 로잘레스의 주도로 고문, 사법 외 살인, 감금 및 실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9000명 이상의 필리핀 국민들에게 그의 재산에서 20억 달러를 보상해 주었다.

1990년대 초 마르코스 가족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마르코스 주니어는 정치적으로 쫓기는 가족들의 보호를 위해 의회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로잘레스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필리핀에 계엄형을 선포했던 1972년 반마르코스 투쟁을 시작했으며, 4년 뒤인 1976년 군에 체포돼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필리핀에 민주주의가 회복된 지 36년이 지난 지금 필리핀은 빈곤, 부패, 불평등, 오랜 기간 지속된 공산주의 및 무슬림 반란과 정치적 분열의 늪에 빠져 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혜택은 대부분 부유층에게만 돌아갔고, 빈곤층은 여전히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필리핀의 실업과 배고픔은 기록적 수준으로 악화됐다.

마닐라의 학자이자 분석가인 리처드 헤이다리언은 독재 이후 자유주의 개혁 정치의 실패에 대한 환멸감이 점차 커져 마르코스 주니어를 궁극적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계엄령 하에서의 상대적 평화와 고요함에 대한 기억이 번영과 평화 증진을 약속하는 마르코스 주니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 2016년 부통령 후보로 나서 1400만 표 이상을 얻었고, 레니 로브레도에게 겨우 26만3000표 차이로 패배했었다. 당시 그에게 승리했던 로브레도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 야당의 후보로 여론 조사에서 마르코스 주니어에 크게 뒤진 2위에 머물고 있다.

'피플 파워'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엔릴 당시 국방장관(98)이 지금은 마르코스 주니어를 지지하는 것은 역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또 당시 쿠데타 음모를 주도했던 그레고리오 호나산 전 육군 대령은 마르코스 주니어에 의해 상원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73세의 호나산은 대통령 후보들 중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국민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국민들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또 다른 마르코스에게 기회를 주자'고 한다면, 누가 그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느냐고 호나산은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