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거산성'서 신라 최초 석축 양식 확인…5세기 방어체계 실체 드러나
국가유산청, 3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오 현장설명회
내·외벽 같은 높이로 맞춘 '초기 신라식 성벽' 첫 사례
두께 최대 14m… 곡부 지형 안정성 위한 이중 구조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3차 발굴조사 대상구역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13/NISI20251113_0001991619_web.jpg?rnd=20251113090642)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3차 발굴조사 대상구역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대구 팔거 산성'이 5세기 후반 신라 최초로 돌로 쌓은 성벽임이 확인됐다.
'팔거산성' 은 함지산(287m) 정상부에 위치한 테뫼식(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둘러쌓은 형태)산성으로, 2023년에 사적으로 지정됐다. 신라가 고구려·백제와 각축전을 벌이던 5세기 이후 서라벌 서쪽 최전방인 팔거리현(달구벌)에 수도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축조한 석축산성이자, 신라의 국방유적이다.
완만한 경사 성벽, 곡성, 성벽 접합부 축조방식 등을 통해 이 산성만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 확인돼 이 산성은 202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팔거산성 3차 발굴조사에서 내·외벽이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 등을 지고 축조된 협축식 성벽, 구획을 나눠 집단별로 분업 축조한 흔적 등이 확인됐다"며 "신라 석축성벽의 초기 구조를 보여주는 첫 사례"라고 13일 밝혔다.
1, 2차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 현문(縣門·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접근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문)식 구조, 곡성(曲城·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둥근 돌출부)이 확인되면서 이 성벽에 신라시대 보편적 축성양식이 확인됐다.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목조집수지 대상구역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13/NISI20251113_0001991628_web.jpg?rnd=20251113090804)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목조집수지 대상구역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2차례 발굴조사에서는 목조집수지(성내 용수를 확보하고 우천시 성벽을 보호하려고 물을 모아두는 시설), 건물터, 수구, 서문터(현문), 곡성 1개 등 다수 성곽시설과 목간과 토기가 나왔다.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 유적 정책관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이전에 발견된 목조 집수지와 연관 지어서 팔거 산성이 어떤 형태였고 당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성과"라며 "팔거산성은 신라가 공격과 방어를 하고 계속 서쪽으로 뻗어나갈 때 중요한 거점이었음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3차 발굴조사에서는 2차 발굴에서 확인된 서문지와 곡성1의 서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면적 2151㎡ 구간 체성(體城·성벽 몸체)에 대한 조사가 중점적으로 실시됐다.
조사결과, 체성, 곡성, 박석 등 다수 석축성(石築城) 관련 시설이 확인됐다.
체성은 초축(성곽이 처음 축조될 때 사용된 기초 성벽 쌓기), 개축(기존 성벽을 허물거나 재료를 바꿔 새롭게 다시 쌓기) 등 최소 2차례에 걸쳐 축조됐다. 신라시대 축조한 초축 성벽 상부에 고려시대 개축 성벽이 중복돼 있으나 개축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다.
팔거산성를 발굴하는 화랑문화유산연구원의 오승연 원장은 "이번 조사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성벽이 두 번에 걸쳐서 축조된 점"이라며 "처음에 만들었던 초축 조성시기를 5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축 체성 외벽은 편축식(성벽 한쪽 면만 쌓아올리는 방식) 하부와 협축식(성벽 안팎 양쪽 면을 쌓아올리고 그 사이를 흙이나 돌로 채워 넣는 방식) 상부로 나뉜다. 하부는 비교적 잘 남아있지만 상부는 아래쪽 1~3단 석축만 남아있다.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축성 과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13/NISI20251113_0001991629_web.jpg?rnd=20251113090842)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축성 과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초축 체성 내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그 기초는 외벽 상단 대비 약 1m 높은 지점에 형성돼 있다. 외벽 상부와 내벽을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 등지고 있는 형태로 쌓아올려 협축식 성벽을 완성했다.
팔거산성의 편축식 성벽 위에 협축식 성벽을 추가로 축조한 초축 체성은 신라 석축성벽 초기형식을 알려주는 중요 성곽시설이다.
오 원장은 "즉, 산 경사면에 경사진 성벽을 만들고 경사진 상면에 평탄면을 만들고 그 위에 수직 벽을 만들었다"며 "이 구조는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축성벽에는 없는, 신라 석축성벽의 초기 형식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라가 석성을 쌓기 전에 토성을 만든다"라며 "팔 거 산성 단면 각도와 5세기에 조성된 대구 달성토성 단면 각도와 비슷하고 팔거산성 성벽에서 신라가 수직 벽에 기단을 보충하는 전형적 석축성을 쌓기 전에 토성에서 석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축조 양식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외벽 하부 성벽은 길이 약 46m, 최고 높이 6.3m, 경사도 약 40°의 허튼층 뉘어쌓기(자연석이나 다듬지 않은 돌을 층의 구분 없이 뉘어서 쌓는 전통 석축 방식)로 쌓았다. 내벽은 길이 약 55m, 최고 높이 2.4m 규모로 남아있다. 외벽 하부와 비슷한 경사도 약 50°의 허튼층 뉘어쌓기로 축조됐다.
외벽 평면은 '一'자형이지만 내·외벽을 합한 전체적인 평면은 '凸'자형이다. 즉, 내벽 중앙부에서 측정한 내·외벽 사이 전체 두께는 약 14m에 이른다. 양쪽 끝에 그 절반인 약 7m로 쌓아 곡성 쪽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내벽 일부를 2배 정도 두껍게 축조한 것은 함지산 곡부에 있는 성벽의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선택한 불가피한 조치로 판단된다.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목조집수지 대상구역 곡성과 박석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13/NISI20251113_0001991624_web.jpg?rnd=20251113090725)
[서울=뉴시스] 대구 팔거산성 목조집수지 대상구역 곡성과 박석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1.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발견된 곡성2는 곡성1에서 서북쪽으로 약 52m 떨어진 곳에서 동쪽 일부가 확인됐다. 체성과 비슷한 허튼층 뉘어쌓기 방식으로 축조됐다.
박석 시설은 곡성2와 체성 외벽 사이에 형성된 남저북고형 지반을 따라서 길이 15.8m, 너비 2.4m 규모로 확인됐다.
체성 외벽 하부와 내벽, 곡성2 등 초축 성벽에서는 석재, 경계부 등 이질적 요소로 구분되는 2.3~2.7m 간격의 세로 구획선이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체성 외벽에서만 14개 구획선이 확인된다.
이는 성곽 축조에 동원된 집단별로 각 구간을 분업 축조하되 이웃 집단과 경계 부분은 협업했음을 알려주는 분할축조 흔적이다.
즉, 체성 축조에 사용된 자색이암과 응회암은 함지산 곳곳에서 쉽게 채석이 가능한 데, 다른 석재가 혼입되지 않고 동일한 색의 자색이암만으로 축조한 구간이 선명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집단이 채석, 운반, 축조까지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일종의 책임시공 방식을 채택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정책관은 "팔거산성의 내부 시설부터 시작해서 성벽까지 차곡차곡 발굴하면서 이 산성이 토성을 쌓는 과정이 남아 있는 석축성벽으로 처음 발견된 것"이라며 "신라가 산성을 쌓아 영토를 확장하지만 외부 침입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조망도 되고 방어도 가능한, 대단히 중요한 이 곳에 이른 시기인 5세기 후엽에 이 산성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원장은 "1600년 전에 삼국시대 백제와 고구려가 대구 달구벌에서 신라의 경주 서라벌로 가는데 이 팔거산성이 대구 진입부에 있는 제일 큰 산성이고 신라가 조망하고 방어하기 좋은 제 1 관문"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유산청은 대구광역시 북구청과 추가 조사를 통해 발굴조사 성과를 구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보존과 활용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오 원장은 "4차 조사가 진행되면 3차 조사 지역에 곡성 전체를 돌아보면서 문이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발굴 성과는 오는 13일 대구 북구 노곡동 발굴 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통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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