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세월호 대리투표

등록 2016.04.11 10:07:56수정 2016.12.28 16:53:41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no contents)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이맘때면 얼굴전체가 가렵다. 딱히 계절을 타서도, 음식을 잘못 먹어서도 아니다.

 2014년 4월 진도 팽목항에서 보름 남짓 취재를 한 뒤부터 이렇다. 바닷바람을 계속 맞다보니 피부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라는 얘긴 그때 만해도 흘려들었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주변 권유도 "심약하지 않다"고 뿌리쳤던 나였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들이 내지르는 울음소리. 떠올리면 내 몸 어딘가에 아직 맴돌고 있는 듯하다.

 수학여행간 자식이 흰 붕대에 싸여 뭍으로 올라오면 부모가 임시 안치소로 뛰어 들어갔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시취(屍臭)는 극에 달했다. 자식이 누운 임시 안치소를 빠져나와 눈물 속에 구토를 하는 부모를 보았다.

 시신이 수습될 때마다 속보를 송고하던 기자들은 노트북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십년 남짓한 사회부 기자생활 동안 이 나라 안팎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 현장은 빠짐없이 돌아다녔다.  

 다치거나 죽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얄팍한 직업의 역량은 비극의 경험치가 쌓일수록 높이 평가된다.

 세월호 참사는 그 경험치에서 유일하게 제외됐다.

 2년 전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벌어진 전대미문의 참사에 서울은 애도의 물결로 출렁였다. 너나할 것 없이 '잊지 않겠습니다'를 반복했다.

 4·16세월호 참사 2주기를 코앞에 두고서 서울 안에서 애도의 흔적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대신 4·13총선의 격렬함이 도처에 널려있을 뿐이다.

 서울시청 외벽에 달린 대형 노란리본을 바라보며 얼굴을 긁는다. 리본에 적힌, 이 미칠듯한 가려움이 아니라면 잊었을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명씩 불러본다.

 그 때 바다에서 스러진 수백 명의 어린 생명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유권자로서 어느 정당, 어떤 후보에게 투표 할까.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기독자유당…. 투표지에 적힌 21개 정당이 죄다 싫다고 벚꽃놀이나 가진 않겠지.

 허락만 된다면 그 아이들 중 누군가가 돼 대신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