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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1980년대 중반 한중 관계 개선 움직임

등록 2017.04.11 0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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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1980년대 중반 한중 양국 간 관계 개선 움직임이 물밑에서 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외교문서공개에 관한 규칙(부령)에 따라 11일 비밀 해제된 1986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중 운송회사 사장 어빙 카우프만은 그해 3월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하고, 다음날 이원경 외무부장관을 만나 "전 대통령께서는 한국과 중공 간 통상증진에 큰 관심을 표했으며, 조용히(LOW-KEY)로 남모르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안나 쉐놀드 여사는 "중공의 신인 주미대사는 본국 정부의 훈령이라고 하면서 한국측에 '중공이 남북대화에 개입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장관은 "지역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해 유엔에 다함께 가입하고 중국은 한국과, 일본은 북한과, 소련은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각각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보장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우리는 중국 및 소련과도 관계를 갖고 싶다"고 표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86년 8월 일본에서 열린 비공개 토론회에 대한 결과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중국 외교부 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실의 타오빙웨이 주임은 "중국 정부가 한중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남북관계가 호전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타오 주임이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한국 외교관에게 "한중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한중 간 학술 교류를 (중국) 당국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다만 중국 측에서는 '교차승인'이 2개의 조선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분열을 영구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이유로 남한과 북한의 유엔공동가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또한 한국 내에서도 중국은 북한을 의식하고 있어 한중 간 단기적이고 획기적인 관계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외교부 또한 중국이 86아시안게임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속내가 "자국의 정치적 목적과 90북경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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