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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춥고 어둔곳에 있는 사람에 위로주는 소설 쓴다"

등록 2017.04.26 15: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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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email protected]

■4년 만에 신작 장편 '뜻밖의 생' 출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 어떤 것을 주제로 삼든, 소재로 삼든, 제 목표는 그 작품을 읽는 사람이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요. 이것이 제 마음 속에 도사린 채 숙제로 남아 있어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어요."  

 김주영(78) 작가가 대하소설 '객주' 10권 완간(2013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신작 장편소설 '뜻밖의 생(生)'(문학동네)을 오는 30일 펴낸다.

 올해로 등단 47년, 한국 나이로 여든을 목전에 둔 일흔아홉이라는 나이에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경북 청송에서 집필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출간을 앞두고 26일 오전 광화문에서 만난 김 작가는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 추운 곳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희망하며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노장만이 쓸 수 있는 삶의 혜안이 담긴 '뜻밖의 생'은 한 사람의 일생을 유년부터 노년의 시간까지 그린다. 삶의 예측 불허함, 행복의 본질, 세계에 내재된 아이러니를 풀어낸다.

 최근 수면 장애로 인해 2~3시간 이상을 연속해서 잠을 들지 못한다는 김 작가는 여든을 앞둔 자신을 "흘러간 말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은유적으로 비유했다.  

 "지금 신작을 낸 것은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것이 아닌가에요. 그 물레방아의 축이 튼튼해야 잘 돌아갈 텐데 이 물레방아는 닳고 닳아 마모가 돼 삐걱거립니다. 축이 빠진 자동차 바퀴처럼 돌아가는 거죠."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email protected]

 그럼에도 자신이 글쓰기를 놓지 않은 이유에 대해 러시아 붉은 광장에서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앞에 놓여 있던 생화를 떠올리면서 설명했다.

 "시골에서 3~4일 또는 7일 걸려서 오는 촌부들이 그 생화를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푸시킨의 시를 암송한 적이 있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런데 이 시들은 주로 촌부들이 암송했어여. 그렇다면 이 시가 가리키는 건 뭐냐.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이 시의 주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당 시의 주제를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다고 했다. "어두운 곳에서 살아서 티가 안 나는 사람들에게 문학이 위로를 주는 것.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문학이 뭐냐고 항상 생각 중이에요."

 항구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는 노인 박호구는 한밤중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여인 최윤서와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남장을 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녀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투명한 말로 노인의 마음을 연다. 노인은 그녀와 대화하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기 시작한다.

 '뜻밖의 생'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한 소년의 성장담이다. 박호구는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사건들 속에서 인생을 배워나간다. 행복과 불행은 분리돼 있지 않으며, 어쩌면 그것은 전적으로 삶을 겪는 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는 소설은 잔잔하다.

 예전보다 글 쓰는 속도가 느렸는데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이 나이에 이걸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육체관계를 맺는 건 질펀하게 그리고 싶고 하층민의 이야기라 거친 말을 쓰고 싶은데 그런 것에 능숙하면 독자들이 제 나이를 생각할까봐 계속 걸렸어요. 이제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가 있는데 저런 소설을 쓰는 할아버지를 두고 사나라고 생각할까봐 그런 이야기를 못 썼어요. 양해바랍니다"라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email protected]

 박호구가 중심인물이지만 그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웃집의 할아버지…주인공이 뚜렷하지 않아요. '객주'라는 소설처럼 그 사람들의 생활이 정말 뜻밖의 생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제목이 반어적인 뜻이 아니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 작가의 대표작 '객주'는 과거 서울신문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이번 '뜻밖의 생'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온라인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커뮤니티인 카페에 문학동네가 개설한 공간에 연재됐다.  

 지면과 온라인에 모두 소설을 연재한 작가가 된 그는 "이번에 고치느라고 반응을 안 봤다"며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최고로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웃었다.  

 이번 '뜻밖의 생'을 고친 과정은 청송의 폐교된 진보 제일고 건물을 증·개축한 객주문학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뜻밖의 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칠칠이라는 이름의 개(犬)다. 칠칠이는 꺼져가는 화롯불처럼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주인공의 작은 불씨이자 위로가 돼 준다. 표지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모양 역시 개의 형상이다. 김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기 전에 잠시 객주문학관에서 진돗개 두 마리를 기른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 취급을 안 한다는 의미로 개를 붙여 거친 말을 사용하잖아요. 밑바닥 층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보통 개를 기른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반대로 개가 사람을 기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와요."

 그러면서 삶에는 언제나 고난보다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밑바닥에 살면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때리면 맞고 밀리는 대로 원망하지 않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죠."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주영, '뜻박의 생' 작가. 2017.04.26. (사진=문학동네 제공) [email protected]

 앞으로도 "어둡고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름 상상력을 동원해서 글쓰기를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늙어서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허허."

 요즘 비석에 새길 말을 노트에 적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에요. 대강의 뜻은 '평소대로 나를 대하라'라는 뜻을 새길 거예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라는 거죠.'

 한편 오는 5월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김 작가가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취임사에 조언한 것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유라시아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김 작가는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 신의주, 중국, 몽골,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라는 문장을 제안했다.

 소설가 출신인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이 권유했는데 "문학하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당시에 참여했다고 했다. 새 정부가 취임사를 부탁해온다면 어떤 문장을 쓰고 싶냐는 물음에 "그럴 리가 없다"며 "젊은 작가도 많은데 삐걱거리는 물레방아를 생각하겠느냐"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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