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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통합·실용의 리더십'으로 유럽의 새 역사 썼다

등록 2017.09.25 0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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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4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국제 오토쇼에 참석해 폭스바겐의 마티아스 뮐러 최고경영자(오른쪽)과 웃고 있다. 2017.09.14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4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국제 오토쇼에 참석해 폭스바겐의 마티아스 뮐러 최고경영자(오른쪽)와 웃고 있다. 2017.09.14

  【서울=뉴시스】오애리 기자 = 앙겔라 메르켈(63) 독일 총리가 전후 독일, 아니 유럽의 정치사를 결국 새로 썼다.

  24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총선거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집권 기독민주당(CDU)의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네번째로 총리직을 차지하게 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의 네번째 총리 임기는 오는 2021년까지로, 재임기간이 총 16년에 이르게 된다. 메르켈 총리의 재임기간은 이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11년을 뛰어넘었고, 4년 임기가 연장되면서 그의 정치적 스승인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세운 최장수 기록 16년과 같아지게 됐다.  

  메르켈 총리는 유난히 별명이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처 전 총리에 빗댄 ‘게르만의 철의 여인’과 독일의 전설적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비교한 ‘뉴(new) 비스마르크’이다. 독일 국민들에겐 ‘무티(독일어로 ‘엄마’란 의미)’란 애칭으로 불리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 구제금융 국가 국민들에게는 고집불통이란 의미에서 ‘프라우 나인(독일어로 ‘아니요 부인’이란 의미)’으로 알려져 있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가르키는 표현으로는 '무티 리더십'이 가장 흔하지만, 그를 단순히 '여성성'의 틀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파리=AP/뉴시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2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리는 공동 기자회견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7.08.29

【파리=AP/뉴시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2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리는 공동 기자회견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7.08.29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메르켈 총리의 정치 스타일 특징으로 '포용'  '통합' '현실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신중한 판단력' 등을 지적한다. '원칙의 리더십' '기다림의 리더십' '듣기의 리더십'이란 지적도 있다.

 지난 2013년 메르켈 총리가 또다시 총선에 승리했을 당시,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 중동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안정된 손(정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메르켈 총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독일 정치인은 없다"고 분석했다. 즉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면서 차분함을 잃지 않는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통했다는 이야기이다.  

 실험실에서 청춘을 보낸 물리학자 출신답게 메르켈 총리는 정책 입안과 수행에 있어 체계적, 분석적, 단계적인 스타일을 고수한다. 유로존 위기 극복을 위한 단기 또는 즉효 처방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서 그는 ‘개혁 없이 지원 없다’ ‘속도보다는 질’을 고수해 숱한 공격과 뭇매를 맞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집권기간 내내 ‘깜짝쇼’나 화려한 정치이벤트를 벌인 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역시 적지 않다. '너무 지루한 스타일'이란 평가도 늘 나온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그런 지루함 뒤에는 과감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콜 전 총리과 결별했던 일이다. 콜 전 총리는 옛 동독 신생 정당의 대변인이었던 메르켈 총리를 발탁해 통일 독일 초대 내각의 여성부 장관으로 기용했다. 그 덕분에 메르켈 총리는 한동안 ‘콜의 양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콜 전 총리가 기민당 부패 정치자금 의혹 사건으로 위기에 처하자, 1999년 12월 기민당 사무총장이던 메르켈 총리는 “당이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그와의 결별을 단호하게 선언했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내 원자력발전소 폐기, 징병제 폐지, 가정복지 강화, 양성 평등정책 등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의 주장을 전격 수용한 것 등도 메르켈의 과감성 또는 포용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메르켈 총리는 현재도 SPD와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함부르크(독일)=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8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여성 기업인들에 대한 재정 지원 논의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7.7,9

【함부르크(독일)=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8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여성 기업인들에 대한 재정 지원 논의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7.7,9


 메르켈 총리는 국내 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확실히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15년 초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4개국(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 정상회의를 통해 메르켈 총리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의 휴전 합의를 이끌어냈을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그를 '세계의 총리'로 격찬했을 정도이다.

 당시 FT는 "어려운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게 메르켈의 정치, 외교스타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스크 협정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메르켈 총리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교전을 중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일단 내려지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게 바로 '메르켈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FT는 메르켈 총리가 '듣기의 달인'이란 점도 주목했다. 메르켈 총리가 남들과 대화할 때, 직접 말하는 비중이 20%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비중은 80%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할 말을 하는 결단력과 행동력을 보여준다고 FT는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는 세계 경제를 위협한 그리스발 재정위기에 맞서 싸웠고, 난민유입 사태에 대한 전 유럽 차원의 대응도 이끌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너무 온건하다는 비판을 들었고,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피눈물도 없는 냉혈자란 정반대의 공격받았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갔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의 고질적인 불량경제국가 문제가 다소 해결되면서 유로존 경제가 제 궤도에 들어서고, 여전히 난민 유입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안정세를 찾기까지에는 메르켈 총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5년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메르켈 총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놓았다. “세계 각지에서 안보와 자유 사이의 균형에 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항에서 메르켈 총리는 전 세계에 중량감 있는 질문을 던졌다. 특히 도덕적 리더십이 부재한 세상에서 확고한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줬다."

【베를린(독일)=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5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에서 만찬회담을 마치고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2017.07.06.  amin2@newsis.com

【베를린(독일)=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5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에서 만찬회담을 마치고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2017.07.06. [email protected]

  이제 세계는 또 다시 '메르켈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 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물론 세계를 뒤흔들면서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감 있는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과연 안으로는 난민 유입에 대한 불안감과 극우주의, 반(反)이슬람주의의 고조, 경제적 도약 압력 등을 해결하는 동시에 '글로벌 리더십'을 펼칠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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